고환택 인하대 겸임교수

"잘 가서 잘 살아라." 결혼식을 끝내고 아들에게 주고 싶은 한마디였다.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을 떠나고 난 후 결혼식으로 마음 고생이 컸던 아내와 영화 한편을 보기로 했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무슨 영화를 볼까? 개봉 영화들이 많았지만 망설임 없이 '보헤미안 랩소디'(브라이언 싱어 감독)를 보기로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의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의 록 밴드가 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았다.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는가 하면, 한국이 영국을 넘어 전 세계 누적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도 낯설었지만 '프리미엄 상영관'이라는 곳도 난생 처음이다. 널따란 소파에 음료와 스낵이 준비돼 있고, 의자 옆면에는 리클라이너 의자의 각도 조절 버튼이 있고 누워서 볼 수 있어 때 아닌 호강을 받은 것 같았다. 영화가 한참 상영되는 도중 주인공인 '프레디 머큐리'의 대사를 듣고 누웠던 의자를 얼른 일으켜 세웠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언제나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라고 말하자 아들 프레디 머큐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서 성공하셨어요?"하고 내뱉는 짧은 한마디였다. 자식을 결혼시킨 뒤 듣는 대사라서 그런지 마치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아, 아버지의 역할이란 끝이 없겠구나.' 순간 자식을 기른 회한이 밀려와 마치 내가 회색 인간이 되는 듯 했다.

많은 분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은 잘 끝났다. 어느 하객분의 말씀대로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편안하고 즐거운 결혼식이었다"는 축하를 받을 때는 정말 감사했다.
결혼식은 '3무(無) 결혼식'으로 치렀다. 첫째는 무청첩(無請牒), 우편으로 보내는 청첩장은 일절 발송하지 않았고, 전화나 모바일을 통해서만 청첩을 드렸다. 둘째는 무송금(無送金), 개인과 단체 그 어디에도 구좌 송금을 받지 않았다. 사정상 못 오는 분들에게는 마음만 받기로 했다. 셋째는 무혼수(無婚需), 오고 가는 혼수는 없기로 했다. 사실 혼수에서 다소 조심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사돈이 흔쾌히 동의해 줬다. 시아버지 입장에서 시집에 오는 며느리에게 다소나마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다.

왜 결혼식을 '인륜지대사'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결혼도 결혼 전과 결혼 후가 있다. 어찌 보면 결혼 전보다도 긴장이 풀린 결혼 후 마무리가 더 중요하고, 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배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자식들은 신혼여행을 떠나지만 부모는 할 일이 많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결혼식장을 찾아준 귀한 발걸음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또 결혼으로 흐트러진 일상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많은 분들의 축복이 없었다면, 그리고 내가 일구고 있는 일터와 일이 없었다면 분명 초라한 결혼식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바짝 났다.

'모든 중심은 일이요, 내 삶의 첫 번째 기준 또한 일이다. 어떠한 일도 나의 일을 방해하거나 붙잡지 못한다'라는 평소의 행동 철학이 다시 서릿발처럼 곤두선다. 결혼식의 피로감에 쉬고 싶었지만 곧바로 회사를 찾았다. 지금까지 회사(일터)와 일이 있었기에 결혼식을 잘 마쳤다는 고마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결혼 당일에도 잠시 회사를 들렀고, 결혼 다음 날인 일요일 역시 회사에 출근해서 결혼식을 찾아 준 한 분 한 분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자정이 다 될 시간까지 하루종일 600통의 문자와 카톡을 보냈다. '나머지는 내일 하지 뭐.' 그런 말은 이미 나에게 금기어이다. 흐트러진 정신력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남과 다른 '무기'(Tool)를 갖고 있어야 진정한 CEO이자, 시아버지로서의 자격을 하나 더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업 시작 후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앞으로도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이 마음을 변치 않고 지키고 싶다. 이제 시아버지가 됐다. 만혼과 비혼의 세태가 만연한 요즘, 그래도 젊은 나이에 새로운 가정을 꾸민 아들 세대들에게 성공적인 인생을 격려하고 싶다. 또 존경받는 시아버지가 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며느리의 예쁜 모습만 보고, 부족함이 있다면 사랑으로 채워주련다. 신혼의 아들 부부에게 사랑과 행복의 염원이 가득 담긴 종이비행기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