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두 인천연구원 기후환경연구센터장


2018년 10월 인천 송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구공동체의 노력에 굵직한 획을 긋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공동의 약속과 함께,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송도 컨벤시아에서 치열한 논란 끝에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지구 기온 1.5도 억제목표의 필요성과 달성방안을 담은 '1.5℃ 특별보고서'를 채택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1850~1900년 지구 평균 기온에 비해 2006~2015년 평균은 0.87℃가 높고 최근 들어 10년마다 0.2℃씩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현재까지 인위적 배출량만으로는 1.5도를 초과하는 온난화의 가능성은 낮다"는 낙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상적인 분석과 함께, 지금까지처럼 배출과 기온 상승의 추세가 지속되면 2030~2052년 사이에 1.5도가 초과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2℃와 1.5℃, 단지 0.5℃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일례로, 2100년까지 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할 경우 2℃일 때보다 해수면이 10cm 내려간다. 이는 1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40%가 해안선으로부터 100㎞ 이내에 살고 있고 도시화를 통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2010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45%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 인위적 배출량이 인위적 흡수량과 균형을 이루는 순 제로(net-zero) 배출 정책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1.5℃로 기온 상승을 묶어두기 위한 한계감축비용은 2℃의 경우보다 3~4배 커지기 때문에 훨씬 더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2030년 이후에 줄이려고 한다면 감축비용이 훨씬 상승하고 탄소배출 인프라가 고착되어 감축효과가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서두르지 않고 미룰 경우 2030년 이후에는 비용만 많아질 뿐 효과가 없다는 경고인 셈이다.

지금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는 와중에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된 다음 날, 네덜란드 사법부는 흥미로운 판례를 만들었다. 2015년 6월 환경단체가 국민 900명을 대신하여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헤이그 지방법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이러한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10월 9일 네덜란드 고등법원 재판부는 정부가 위험한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항소를 기각한 것이다.
트럼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기후변화가 화석연료의 과다한 사용과 이로 인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증가 때문임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곧바로 탄소 배출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해온 이유를 기후변화정책이 성장을 지체시킬 수 있다는 근시안적 판단이라고 금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는 진단한 바 있다. 그는 또한 정책이 과학에 훨씬 뒤떨어져 있으며, 수많은 사람과 기업,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행동하게 하려면 그에 따른 인센티브와 불이익이 분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번 IPCC 48차 총회를 마무리하면서 IPCC 워킹그룹(WG) 의장단은 이구동성으로 "인류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하지만 지금 즉시 행동해야 한다. 지금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다."고 얘기한다. 매우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1.5도 달성을 위한 4가지 모델 경로 중 예시를 빌미로 삼아, 국내 일부 언론과 원전 찬성그룹에서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으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짐 스키 IPCC WG3 공동의장이 "특정 기술에 대한 적절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고 원전에 대해서는 중립적 입장이다"고 기자회견에서 분명하게 언급했는데도 말이다.
'1.5도 특별 보고서' 작성을 위해 40개국 90여 명의 저자와 133명의 공저자가 참여했고, 6000건이 넘는 연구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리뷰에 참여한 학자만도 1113명이었다. 이번 1.5℃ 특별보고서가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릴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자는 논의의 확고한 근거로 활용되어 '정책이 과학과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