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7월23일(목)

 어제 알락에르드네 마을에서 새 타이어라고 사서 교체한 그 타이어였다. 뒷바퀴였으니 말이지 앞바퀴엿으면 큰 일 날뻔 했다. 조심스럽게 가고 있으니 오전 7시에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불간시에 들어온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두 사람을 만나 자동차 수리소를 물어 같이 가서 소련군용 지프차의 타이어를 개조하여 우리차의 휠에 끼웠다. 그런데 이 타이어의 폭은 우리 것의 3분의 2밖에 안되고 직경은 15㎝나 더 컸다. 이 중 한 사람의 이름이 불간이었다. 불간시에서 처음 만난 귀인이 「Mr 불간」이었던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오전 9시55분 불간시를 떠나 동남쪽으로 달렸다. 앞으로 울란 바아타르까지는 약 360㎞ 남았다. 예정 보다 하루 늦었으나 오늘중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날씨가 좋은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두 인민가수는 교대로 운전하고 교대로 잤다.

 오전 10시55분 오르혼강에 도달했다. 목동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어제처럼 길을 잘못 들면 오늘중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정보수집을 하고 또 전주도 놓치지 않으면서 동남쪽으로 달렸다. 12시15분경 늪지에 벤츠승용차가 빠진 것을 꺼내 주었다. 우리차는 4륜구동이니 믿음직스럽다. 오후 1시55분에 톨강(고도 1천5m, 25℃)에 도달하여 점심을 해먹었다. 울란 바아타르를 출발해서 몽골의 초원을 총 2천9백62㎞를 달려온 것이다. 이 톨강은 울란 바아타르에서 흘러온 것이다. 우리들의 사기가 올랐다. 날씨도 좋고 밝은 낮이니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톨강을 지나니 주위는 어느덧 돌산으로 바뀌었다. 오후 3시50분 오보(고도 1천2백75m·25℃)에 왔다. 이제 280㎞ 남았다. 오후 4시30분경부터 사방은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저멀리 지평선까지 초원이 이어지고 가릴 것은 하나도 없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니 사방에 여러 가지 모양의 뭉게구름이 떠 있다. 이렇게 맑은 하늘이 이 지구상에 있었단 말인가? 이 하늘을 우리 나라로 가져 갔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봤다.

 오후 6시40분경부터 왼쪽에 꼴호즈(집단농장)가 여러 곳 보인다. 오후 7시10분에 타이어를 점검하니 며칠전부터 조금 찢어진 채 사용하고 있던 왼쪽 뒷타이어의 튜브가 약간 삐져 나와 있다. 타이어와 튜브 사이에 라이너를 넣었지만 안심이 안된다. 우리는 포장도로가 나타나기만 바라면서 울란 바아타르를 향해 마지막 힘을 기울이고 있다.

 초원의 길은 어떤 때는 언덕 저쪽이 안 보일때도 있다. 언덕에 올라 포장도로가 보이나 하고 보면 또 언덕이다. 이렇게 해서 아마 십여개는 넘은 것 같다.

 오후 7시30분 트럭터미널(고도 1천1백50m)에 도착하여 사이다(₩200)를 한 병 샀는데 이 곳에서도 병을 돌려 주어야만 살 수 있었다. 병이 귀한 것이다. 그 곳을 떠나 얼마 안가서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모두 박수를 한 없이 쳤다. 포장도로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우리들은 신나게 달리면서 아리랑, 혜은이의 감수광을 합창했다. 그런데 15분도 지나지 않아 드디어 염려하던 왼쪽 뒷타이어가 펑크 났다. 아직 울란 바아타르까지는 100㎞나 남았다. 즉시 소련군용 지프차의 것을 개조한 타이어를 갈아 끼웠다. 우리차의 타이어보다 폭은 3분의 2 밖에 안되고 직경은 15㎝나 더 컸지만 잘 달리고 있다. 좌우 타이어의 직경이 이렇게 틀려도 갈 수 있는 것은 자동차의 차동장치(差動裝置·Differential gear)때문이다. 몽골 사람들은 이론은 모르지만 해보니 괜찮아 이런 개조를 했을 것이다.

 밤 9시10분 언덕을 넘어서니 저 멀리 울란 바아타르 발전소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박수, 박수치고 또 쳤다. 만세도 부르고 싶었다.

 밤 9시25분에는 왼쪽에 북경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철도도 보인다. 밤 9시33분에는 초원의 저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장엄한 초원의 낙조(落照)다. 멀리 울란 바아타르가 보인다. 또 박수, 박수를 쳤다. 밤 9시40분 200m 앞에 울란 바아타르 탑과 검문소가 보이는 곳에서 지금까지 운전하고 있던 톱신 자르갈이 치멕트 자야와 교대하고 있다. 다 왔는데 왜 교대하느냐고 물으니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3일간 운전면허 없이 밤낮으로 운전한 것이다. 그는 운전을 매우 잘 했다.

 밤 10시16분 드디어 한국회관에 도착하니 모두 반가이 우리를 맞으면서 몹시 걱정했었다고 한다. 지난 7월11일 울란 바아타르를 떠나 중부 몽골 초원을 횡단하고 또 올라스태까지 남하 하였다가 다시 헙스걸호까지 북상한 다음 동쪽으로 달려 불간시를 거쳐 다시 남하하여 울란 바아타르까지 총 2천8백43㎞를 달렸다.

 7월9일 흉노의 노인올라 고분과 7월10일의 돌궐 귀족 무덤에 갔다온 것까지 합치면 몽골초원 총 3천1백23㎞를 주파한 것이다.

 수 없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어코 해냈으며 「칠순 기념여행」 치고 진짜 유익하고 멋있는 여행을 했다.

 6개 성(省)과 수 많은 강과 고개를 건너고 넘었으며 무수한 오보에서 무사하게 여행을 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고수레를 했다.

 인정많은 수 많은 몽골 초원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 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친구 톱신 자르갈과 치멕트 자야도 수고했다.

 그들은 책임감도 강한 사람들이여서 마지막에는 밤낮으로 달려 하루 늦기는 했지만 무사하게 울란 바아타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고 또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여행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오로지 박원길 박사 덕분이었다.고수레는 神에 고하는 여행신고

 오늘은 몽골에 온지 18일째 되는 날이며 이 곳을 떠나는 날이다. 울란 바아타르의 오하 국제공항에 나갔더니 두 남녀 인민가수가 전송나와 있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이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 할 수 없이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두 사람은 출입국 심사대를 지난 면세구역까지 들어와 있었다.  이 곳에서 술인사가 시작됐다. 몽골인들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과 이별할 때는 언제나 술을 마신다. 떠나는 사람의 안전한 여행을 비는 의식의 일종이다. 이 곳에서도 고수레하여 신에 고한다. 신에 대한 일종의 여행 신고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아쉬운 작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