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든 다수든 교사들의 모임이 잦다. 서너사람이 만나기도 하고 여럿이서 무슨 무슨 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옛 동료였던 퇴직교사가 합석하기도 한다. 동년배 끼리거나 어느 학교에 함께 재직했던 동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이들은 퇴근길을 틈내 저녁을 나누고 현역시절의 회고나 현 교단을 푸념하는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화제는 대개 이를테면 현장보고 처럼 최근의 교직자들의 처지가 주로 되기 쉽다. 갈수록 교단에 서기가 두려우며 진작에 교직을 떠난 동료의 결단이 부럽다고 까지 말한다. 한동안 체벌과 촌지 문제로 얼굴을 들 수 없게 하더니 지금은 아예 교권이 땅에 떨어진 상태라고도 한다. 어린 제자들의 자세가 심상치 않고 학부모의 반응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이러다가 결론삼아 토해내는 자조적 넋두리가 요즘 새 유행어인 「이판사판」이다. 즉 일전의 모 신문에도 소개되었다는데 『학생은 개판 교실은 난장판 교사는 죽을판 학교는 무너질판 교장은 이판사판…』하는 식이다. 오늘의 교육현장이 어느 지경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오늘 처럼 된 교권추락의 책임은 신뢰를 상실한 교단에도 있다. 그러나 자녀를 키우는 어른들이 평소 스승 대접을 어떻게 했는지를 깊이 자성해야 한다. 예전엔 더러 스승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자녀들 앞에서는 험담을 삼갔다. 스승을 하늘 처럼 인식하는 철부지들에게 행여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작은 경우까지도 침소봉대 부조리의 집단 처럼 매도한다.

 그렇더라도 10일자 본지의 「교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의 보도 내용은 해도 너무 했다. 어떻게 교사의 잡담주의가 욕설이 되고 학생이 스승과 마주 머리채를 끌어 당기며 싸우도록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수모를 당한 여교사는 충격으로 출근도 못하고 있단다. 자세한 사정과 시비는 샅샅이 가려내야 한다.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번만 아니라 신문사에는 종종 호소하는 교사들의 항의가 잦다.

 그렇더라도 10일자 본지의 「교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의 보도는 해도 너무 했다. 여중생과 스승이 어떻게 마주 머리채를 끌어 당기며 싸우도록 되었는지 개탄스럽다. 수모를 당한 스승은 충격으로 출근도 못하고 봉사지도를 마친 학생은 아무일 없었던듯 등교하고 있단다. 자세한 사정과 시비는 샅샅이 가려내야 한다. 쉬쉬해서 안된다. 이번만 아니라 신문사에는 종종 호소하는 교사들의 항의가 잦다.

  스승 대접

  소수든 다수든 교사들의 모임이 잦다. 서너사람이 만나기도 하고 여럿이서 무슨무슨 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옛 동료였던 퇴직교사가 합석하기도 한다. 동년배 끼리거나 어느 학교에 함께 재직했던 동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이들은 퇴근길을 틈내 저녁을 나누고 현역시절의 회고나 현 교단을 푸념하는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화제는 대개 이를테면 현장보고 처럼 최근의 교직자들의 처지가 주로 되기 쉽다. 갈수록 교단에 서기가두려우며 진작에 교직을 떠난 동료의 결단이 부럽다고 까지 말한다. 한동안 체벌과 촌지 문제로 얼굴을들수 없게 하더니 지금은 아예 교권이 땅에 떨어진 상태라고도 한다. 어린 제자들의 자세가 심상치 않고 학부모의 반응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이러다가 결론삼아 토해내는 자조적 넋두리가 요즘 새유행어인 『이판사판』이다. 즉 일전의 모신문에도 소개되었다는데 『학생은 개판 교실은 난장판 교사는 죽을판 학교는 무너질판 교장은 이판사판…』하는 식이다. 오늘의 교육현장이 어느 지경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오늘 처럼 된 교권추락의 책임은 신뢰를 상실한 교단에도 있다. 그러나 자녀를 키우는 어른들이 평소 스승 대접을 어떻게 했는지를 깊이 자성해야 한다. 예전엔 더러 스승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자녀들앞에서는 험담을 삼갔다. 스승을 하늘 처럼 인식하는 철부지들에게 행여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들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작은 경우까지도 침소봉대 부조리의 집단 처럼 매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