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가을 뻐꾸기'     
[썰물밀물] '가을 뻐꾸기'     
  • 정기환
  • 승인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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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환 논설실장
얼마 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가을 뻐꾸기 같은 수작' 운운의 악담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의 신년 회견을 겨냥한 것이다. "남북대화는 미국이 주도한 제재·압박의 효과" 등의 언급 때문이라고 한다. 불과 며칠 전의 판문점 남북고위급회담을 감안하면 '돌변'이었다. 우선 '가을 뻐꾸기'라는 은유가 참 생소했다. 언론들은 '철 지난' 또는 '말도 안되는'으로 풀이했다. '핵 강국'에 대해 감히 분수도 모르고 날뛴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뻐꾸기는 과연 여름새였다. 예전에 '뻐꾹 뻐꾹'하는 소리도 봄이나 여름에 들었던 것 같다. ▶남한에서는 '뻐꾸기 날린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애초에 생각도 없으면서 공수표 선심만 쏘아대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이번 주말에 우리 동네서 한잔해" 하고선 감감 무소식인 경우다. 이런 일이 몇번 되풀이 되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뻐꾸기 선생'으로 통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무슨 말만 꺼낼라쳐도 주변에서 두 손을 입에 대고 '뻐꾹 뻐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뻐꾸기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탁란(托卵)에서 비롯된 듯 하다. 자연 다큐물 등에서도 뻐꾸기의 탁란은 단골 소재다. 뻐꾸기는 스스로 둥지를 틀지 않고 멧새·종달새·딱새 등의 둥지에 제 알을 낳는다. 딱새 등의 가짜 어미새가 제 알인 줄 알고 10~12일간 품으면 새끼 뻐꾸기가 알을 깨고 나온다. 그 다음이 더 놀랍다. 이 놈은 곧 바로 같은 둥지안에 있는 딱새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 독차지한다. 이때부터 어미 딱새가 물어오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어느 정도 자란 뒤 주위를 맴돌던 어미 뻐꾸기를 따라 떠나는 것이다. 종족번식 본능이겠지만 실제 영상으로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한에서는 뻐꾸기가 꽤 친근하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대 한때 유행한 뻐꾸기 시계 때문이다. 거의 집집마다 뻐꾸기 시계가 있었고 아침에는 '뻐꾹 뻐꾹'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집들이 선물로도 첫 손에 꼽혔다. ▶그나저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처럼 당하는 데도 댓글부대가 조용한 게 좀 의외다. '가을 뻐꾸기 수작'에 그치지도 않았다. '얼빠진 궤변', '가련한 처지', '주제넘게 (트럼프에) 발라 맞추는 비굴한 처사' 등등. 중국에서 폭행당한 기자들도, 안희정 충남지사도 혼이 났던 댓글부대 아닌가. '내로남불'이 아닌 '북로남불'이어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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