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수 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2011년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우리 집에도 대한민국 많은 가정이 겪고 있었던 고3병이 나타날 조짐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과 부인의 관계도 악화일로에 놓였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무엇보다 평생을 교육에 종사했기에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던 학자적인 모습도 컸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를 두고 또 고민했습니다. 말로 훈계를 해야 하나. 아니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등등 여러 방안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러던 중 미국 여성으로서 20세기 현대무용을 크게 발전시킨 마사 그레이엄과 그이의 아버지가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초등학생 딸에게 유리컵에 담겨 있는 맑은 물을 보여 주면서 '그레이엄! 무엇이 보이니?'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레이엄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라고 평이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유리컵에 있는 물을 현미경에 놓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물었습니다. '그레이엄! 이번에는 무엇이 보이니?' 그레이엄은 현미경의 물에서 떠도는 수많은 미생물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그레이엄! 보이는 것만 보아선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레이엄은 아버지의 충고로 인하여 많은 곳에서 보이지 않은 것을 보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것을 발레로 표현했습니다. 마침내 그레이엄은 현대 무용 발전에 아주 큰 공헌자로 이름을 남겼고, 97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레이엄의 전기를 읽은 후 감명을 받은 저는 그레이엄의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눈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또 고민을 했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아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2011년 12월에 감사를 실험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도록 도와주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이어집니다.
우선 똑같은 투명한 두 컵과 뚜껑, 세균이 묻지 않은 깨끗한 흰 쌀밥, 사용하지 않았던 나무젓가락을 준비했습니다. 아들이 두 컵에 같은 정도의 흰 쌀밥을 각각 담고, 아들이 두 컵 중에서 선택하여 한 컵에는 Thankful(감사하다.), 다른 컵에는 Non-thankful(감사하지 않다)이라고 써 두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Thankful이라 쓴 컵에는 보기 좋은 핑크색으로, Non-thankful이라 쓴 컵에는 보기 싫은 진한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감사 실험을 통해 '말 못하는 밥도 감사하다, 감사하지 않다고 쓴 글씨에 따라 변한다'는 귀중한 진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감사 실험 후에 농담이라도 부정적이거나 나쁜 말, 실망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긍정적이며 좋은 말, 희망적인 말을 하면서 이제 습관이 들었습니다.

저는 감사 실험 후에 아들에게 "요한아! 말 못하는 밥도 감사하다, 감사하지 않다고 쓴 글씨에 따라 변하듯이, 공부하다 실망하면 그 실망이 네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공부하다 힘들 때가 있으면 희망을 가지고 희망을 꿈꾸면 그 꿈대로 이루어진다"라고 충고를 하곤 합니다. 아들은 자신이 직접 실험한 감사 실험이었기에 아버지의 충고를 100% 동의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제 주위 학부모들을 보면 자녀들의 성적과 전공 선택 등을 두고 많은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업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자기 현재 상황에서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자녀들이 우리나라와 세계적으로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는 기틀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자녀들의 성적과 전공 선택보다 자녀들이 어떤 인물이 되길 바라는지부터 생각해 주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