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변호사
2017년 9월 24일 6년동안 사법부 수장으로 대법원장의 직분을 수행하던 양승태 대법원장이 헌법 제105조 제①항에 따라 임기를 종료한다. 사법연수원 2기인 양 대법원장은 임용 당시에도 63세로 가장 고령에 속하고, 기수 또한 가장 빠른 상태였다. 많은 분이 사법시험 회수와 사법연수원 기수를 혼동하는데, 사법시험 11회가 처음으로 연수원에 입소했으므로 10년 차이가 난다. 그는 대법원장이 지닌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적극 활용해 자신과 동일한 서울대 법대, 판사, 남성 출신의 후배 법조인 그룹을 중심으로 대법원을 구성했다.
이 분들은 민·형사 법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오랜 법관생활로 청렴성·정치적 중립성이 강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같은 지식, 삶을 살아온 사람들로 구성했기에 사회의 다양성에 부합하는 판결을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근로자 파업과정에서 사업주에게 다소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선전물을 붙였더라도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을 때, 보수적 대법원을 이끌어온 기존 모습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는 데 경악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법원장 지명권을 이용해 법원 내 진보적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의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정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소장 법관들이 사법부의 지나친 보수화에 반대하면서 사법부 내부 문제에 대해 체계적 연구를 할 목적으로 만든 연구회로 사법부 내 민변의 역할을 수행한 단체이다. 사법연수원 15기인 신임 후보자는 전임자와 13기나 차이를 보여 대법원의 보수화와 지나친 관료화를 막을 수 있다는 셈법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신임 후보자의 성격이나 청정한 삶을 살아온 지난 삶의 궤적을 보더라도 사법부의 독립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이제 새로 출범할 김명수 대법원장을 선장으로 한 대법원, 더 나아가서는 사법부에 바란다.
첫째, 사법부에 보수·진보의 균형을 맞추라는 점이다. 대법관 임기가 종신제인 미국 대법원의 경우 어떤 진보 대법관은 말기암인데도 대통령이 진보적 인사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뀔 것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버틴 적도 있다.
총기규제법이 합헌인지가 문제가 되면 진보법정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총기소유를 제한하는 법률에 동의하고, 보수 법정은 국민의 총기소유 자유를 막는 법률안을 위헌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보·보수법정은 우리 사회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혼, 난민문제, 더 크게는 철거문제를 포함한 경제적 문제에 견해를 달리 할 수 있다. 격렬하게 논쟁을 한 결과를 한 사회의 고민의 산물로 판결문에 남기는 것, 이것은 사법부의 의무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진지한 논쟁이 너무 많아서 걱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아집과 이를 전혀 깨지 않으려는 고루함이 문제이다.
둘째,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한 배려를 하는 법원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아직도 낙후한 우리나라 법의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마치 내 밥그릇을 빼앗기는 것으로 의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특권에 대한 목마름을 포함한 퇴행적 의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강한 배려가 자선이 아닌 의무임을 법원의 판결에 담아나가야 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 대법원의 가장 큰 약점의 하나로 대법원이 과연 인권의 최후보루였는지에 대한 강한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사법부가 가진 자들의 터무니없는 '갑질'에 대해 철퇴를 가할 때 운전기사, 비서, 여직원 위에 군림하며 인권을 제약해 온 자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적극 활용해 여성출신, 자신을 재조라고 부르는 판사, 검사들에 의해 재야로 불리는 변호사, 법학교수들을 과감히 발탁해 주길 바란다. 판사 위주의 대법원을 구성할 것이라면 사실 최종심이자 법률심인 대법원의 존재이유를 알지 못한다. 동일한 사고방식과 사유체계를 지닌 분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사회의 기준과 제도를 탄생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임기 중 적지 않은 숫자의 대법관 변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법률가 또는 법학자로 구성하는 한계는 있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한 사람들로 채우기를 바란다.
대법원장은 사법부 구성원에게 최선을 보여야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인권의 최후보루로서 사법부의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사법부 구성원의 다양화, 소수자 배려의 원칙 확립, 사법부 독립의 소중한 가치 등을 지켜내는 초석이 될 것을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