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남편 사업 기울자 불화
수년 폭력 못견뎌 흉기 찔러
유혈 남편 14층서 투신 숨져
녹두색 수의를 입은 이모(33·여)씨는 법정에서 "수년간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그날도 갑자기 흉기로 제 허벅지를 찔렀고 극도의 위협을 느껴 흉기를 뺏으려 승강이를 벌이다 남편에게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라며 흐느꼈다.

지난해 겨울, 경비원 A씨는 아파트 1층 승강기 앞에서 알몸 상태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아파트 3층에 사는 이씨였고 A씨는 곧바로 119 상황실에 신고했다.

잠시 후 화단 쪽에 '쿵' 소리가 들렸고 14층에서 떨어진 이씨의 남편 정모(69)씨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조선족인 이씨는 2002년 자신보다 36살이나 많은 정씨를 만나 결혼하며 남부럽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얼마후 정씨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고 이씨와의 사이에 불화도 생겼다. "부인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며 이씨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했다.

정씨는 2012년 말 주먹으로 이씨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는 등 잦은 폭력을 휘둘렀고, 이씨는 이를 피해 다른 거처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지난해 12월16일. 이씨는 아들의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자 집에 들른 사이 정씨와 맞딱뜨렸다.

정씨는 베게 밑에 미리 감춰둔 흉기를 꺼내 이씨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렀다.

이씨는 남편에게 달려들어 흉기를 빼앗은 뒤 마구 휘둘러 정씨의 얼굴과 팔, 허리 등 15군데 상처를 입혔다.

정씨는 피를 흘리며 집 밖으로 나와 승강기를 타고 14층으로 올라간 뒤 아래로 뛰어내려 숨졌다.

이씨는 역시 기어서 밖으로 나와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다행히 경비원에게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법정에 선 이씨는 "남편이 흉기로 공격한 뒤 바로 자해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흉기를 뺏고자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일부 상해를 입혔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남편의 상처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부위에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자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당방위 역시 "이씨의 행위는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살해 등 공격할 의사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지난 25일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의정부=강상준 기자 sjkang15@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