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이 나라 4천5백만 국민 중 성인은 제일 먼저 6·25를 떠올릴 것이다. 수많은 사상자, 황폐화된 국토, 1천만 이산가족 등 근세사에서 이토록 처참한 비극이 있었을까.
 그 아픈 상처는 아직도 분명하게 남아있다. 더구나 이 비극이 50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가해자인 북한이 반성은 커녕, 6·15 남북공동 선언이후 대립과 반목을 청산하기 위한 우리의 평화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해 침범과 어선 총격 등 불안요소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서울 어느 지역에서는 현충일에 태극기를 내건 집이 전체 아파트 세대수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얼마전 한 일간지에서는 이 지역 사람들이 소득세 체납을 제일 많이 한 것으로 보도한 적도 있다. 왜 그럴까.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동작동 국립묘지를 잊었고, 6·25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이들이 아직도 보훈병원에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월남전때 고엽제로 불치의 병을 얻어 고생하는 이웃들을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민주화 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내 조국이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기업주를 상대로 노동쟁의를 벌일 수 있는 것도 산업이 발달한 내 나라 내 직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회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더 정의롭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그렇다면 이 나라 건설의 토대는 누가 만들었는가. 정치를 잘한 직업 정치인들 덕분인가, 요리조리 군대 가기를 피해 다닌 머리 좋고 똑똑한 요령 있는 사람들 덕분인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앞으로 돌격하라는 지휘관의 명령 한 마디에 대포소리가 귀청을 때려 고막이 찢어지고,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알 속을 뚫고 달리다가 쓰러진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동작동 국군묘지는 그런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그러면 이제 비극은 다 끝나버린 것인가? 이 역시 그렇지가 않다. 남북이산가족이 오가고 금강산을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하여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뜻한 남쪽나라 대한민국을 찾아 북한을 탈출하는 버림받은 동포들은 오늘도 중국땅을 정처 없이 헤매고 있다.
 얼마전에 조선족들이 모이는 연길의 한 대형교회에서, 북한의 학정을 폭로하는 탈북 어린이들이 북한측 요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북한이 어려울 때, 기댈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작년 한해만 해도 수 천명의 탈북자를 잡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낸 나라이다. 우리와는 수교를 터 우방이라고 자처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록은 동색이라고 사회주의 체제를 함께 갖고 있는 중국과 북한은 6·25의 혈맹으로 맺어져있다. 그곳으로 살길을 찾아 나왔다가 중국 공안원과 파견된 북한 요원들에 의해 잡혀가 처형되고, 기독교인들은 공개처형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바로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허한 정치구호나 외치는 식의 애국이나, 민족을 앞세운 경쟁적인 통일지상의 통일운동은 경계되어야 하며,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대북관을 가져야 할 때다. 우리가 정녕 이루고자 하는 통일조국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 수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