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屈子無窮怨 汨日夜流羅 年年端午日 競渡此江頭""
 고종조의 여류시인 강지재당(姜只在堂)의 단오를 읊은 한시이다. `굴원의 원한이 끝없어/멱라수는 밤낮으로 흘러가고/해마다 단오이면/그를 위로하느라 강 건너기를 겨루네""
 간신배의 모략으로 강남으로 유배 단오날 그곳 멱라수에 몸을 던진 이가 굴원이다. 지금도 무덤과 사당이 있다는 멱라수가에서 해마다 이날이면 용선 경주를 한다. 용의 머리를 장식한 길고 가느다란 배에 노잡이들이 타고 저어 나간다. 활력을 부어주느라 북을 두드리는데 구경꾼들이 열광한다. 이때 빚어온 송편을 물에 던지는데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뜯지 않토록 하기 위해서이다.
 단오와 연관한 또 하나의 고사가 있다. 맹상군의 생일이 바로 단오날이다. 진나라에 초빙되었으나 죽임을 눈치 채고 닭울음 소리로 함곡관 문을 열게하여 탈출한 장본인이다. 그가 단오날 태어나자 아버지가 내다 버리라고 한 것을 어머니가 몰래 키웠다. 단오날 태어난 아이는 키가 문높이 만큼 자라면 부모를 해친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성장하여 부모를 죽이기 때문에 버린다는 모티프는 동서를 가리지 않고 있다.
 우리도 단오날 민속이 풍성했다. 그중의 대표격이 그네와 씨름이다. 음력으로 5월이면 급한 모내기도 마쳤겠다 녹음이 짙어지는 때여서 하루쯤 쉬면서 즐기는 여유가 가능했다. 그래서 아낙들은 그네를 매어 치맛자락을 날리고 남정네는 개울가 모랫톱에 나가 씨름으로 힘자랑을 했다.
 이 때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이기도 해서 나라에서는 신하들에게 부채를 나누어 주는데 이것을 단오선이라고 했다. 또한 이날 정오 때에 맞추어 쑥과 익모초를 뜯어 모았다. 쑥과 익모초는 가내의 요긴한 상비약이었다. 그리고 여인들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 나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다. 창포는 잎이 뾰족하고 긴 다년생초이다.
 그러나 지금 단오도 민속도 시들하다. 삶의 주변이 너무 삭막하고 옹색하다. 그러고 보면 올 한해도 반이나 훌쩍 지나버렸다. 어느새 장마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