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마음 오롯이 … 흩어진 사람들 하나로 묶다
▲ 인천아트플랫폼 광장에 설치된 영화 소개판.
▲ 개막공연을 하고 있는 조정치·하림.
▲ D-아카데미 섹션에서 가마쿠라 히데야 감독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이혁상 총프로그래머

내일까지 33개국 50편 상영
난민과 이주여성 집중 조명
대담·포럼 등 학술 행사도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제 5회 인천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지난 26일부터 한창이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인천시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인천영상위원회·인천문화재단이 협력해 주관하는 행사로, 문화다양성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는 명실상부 인천 대표 영화제다.

1883년 개항 이후 서구 근대 문물이 유입되면서 산업·국제도시로 자리매김한 인천은 1902년 최초의 이민선이 하와이로 향하는 등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짙게 띠기 시작했다. 강석필 인천영상위 사무국장은 "토박이 10%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각지에서 모인, 태생적으로 다양성을 띠는 도시가 바로 인천"이라며 "다문화가정 역시 전국 광역시 중 8만9000여명으로 가장 많아 그야말로 디아스포라적인 도시"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 계급·인종·민족·성별 등 다양한 정체성의 경계에 놓인 디아스포라를 조명하는 33개국의 영화 50편이 초청됐다. 세계적 석학과 작가, 평론가 등을 초청한 대담과 포럼 등 학술 행사도 펼쳐졌다. 오는 3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중앙광장은 '환대의 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간으로 꾸며져 시민들을 반긴다.


#'환대의 시작', 2017 디아스포라영화제
"디아스포라가 남 얘기가 아니에요. 저 역시 디아스포라고 주위를 둘러보면 디아스포라 투성이죠." '비정상회담'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창한 한국어를 뽐낸 미국인 타일러 라쉬의 한 마디로 모두들 차분해졌다.

타일러와 장성규 아나운서의 인사로 5일간의 영화제 여정이 시작됐다. 미국인이 사회를 보고 한국인이 통역을 하는 진풍경은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였다.

축하공연은 기타리스트 조정치와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준비했다. '연어의 노래', '배낭여행자의 노래', '늙은 언니의 충고' 그리고 하림이 몽골 사막에서 본 낙타를 보고 지은 곡 등 영화제 주제와 맞는 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연령대는 어린이부터 60대 중년까지 다양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흠뻑 취한 이들은 리듬을 타며 영화제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로 모든 장벽을 넘어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임순례 인천영상위원회 위원장과 "작고 소박한 영화제지만 환대와 연대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영화 50편으로 충만하게 채웠다"는 이혁상 프로그래머의 인사로 본격 막이 올랐다.

영화제의 꽃인 개막작은 인천의 공단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의 디아스포라 린과 호주로 가려는 디아스포라가 되려는 한국인 연희의 우정을 그린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가 장식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청년으로, 노동자로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두 여성의 우정이 잔잔하게 연출돼 관객들의 마음을 열었다.

영화제에 처음 왔다는 최기현(36)씨는 "평소 영화를 좋아하고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주제와 작품들이 좋아서 아예 근처 호텔에 2박3일 예약해놨다"고 말했다. 조아빈(18·인하여고)양도 "인천에서 이런 영화제를 하는지 몰랐는데 와서 보니 신기하고, 단편영화와 이를 작업하는 감독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며 "내일은 '문라이트'를 보러 와야겠다"고 말했다.

남은 기간에도 10여 편의 영화 상영은 물론 ▲디아스포라 인 포커스(난민: 환대와 연대) ▲디아스포라 월드와이드 ▲코리안 디아스포라 ▲아시아 나우-베트남 ▲디아스포라의 눈 등의 섹션이 진행된다. 모두 무료며, 영화제 홈페이지(www.diaff.org)나 032-435-7172로 문의하면 된다.


#마음 속 벽 허물고 관심을 가지는 것
27일 오전 10시 한중문화관 4층에서 D-아카데미 첫 번째 섹션 '난민문제의 원점-팔레스타인의 인권변호사 라지슬라니와의 대화'가 진행됐다. 대담은 재일조선인 2세인 도쿄경제대 서경식 교수와 디아스포라를 집중 조명하는 일본의 NHK 가마쿠라 히데야 감독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가자에 뿌리를 내리다'는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과 봉쇄를 가까스로 피해 일본을 방문했던 팔레스타인의 인권 변호사 '라지 슬라니'와의 인터뷰를 수록한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력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행위로 그야말로 생기를 잃어버린 고통 받는 곳. 유대인이라는 디아스포라에 의해 터전을 떠나 또 다른 디아스포라가 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라지 슬라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하지만 낙관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팔레스타인과 난민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보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문제에 개입하는 행위와 이를 조명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가마쿠라 감독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한 제2차세계대전 전후문제는 한편으로 보면 부끄럽게도 '가해자' 입장이기에 일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런 활동을 하는 나조차도 국내에선 난민이자 디아스포라"라고 고백했다.

'재일조선인 2세'라는 경계인의 위치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현실, 국민주의의 위험 등 디아스포라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서경식 교수는 "일본에서 소수자인 나는 늘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껴 혼란스러웠다"며 "지금 시점에 보편성과 인간애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연대하는 삶을 이뤄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혁상 총프로그래머]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 꼭 보세요"
지난 1월부터 오늘까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혁상(44) 총프로그래머는 생각에 잠겼다. 인천 아트플랫폼 근처 호텔에서 스텝들과 묵으며 동고동락한 시간이 떠올랐나 보다.

지난해 인천 다큐멘터리포트에서 작품 '공동정범'으로 상을 받고, 스텝으로 일하면서 인천영상위원회와 인연이 깊었던 이 감독. 무엇보다도 지난 2010년 성정체성을 밝힌 그는 '디아스포라' 당사자이기에 누구보다 영화제 성격과 딱 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영화제가 넓은 의미의 '디아스포라'를 소개해 왔다고 보고, 올해는 당대 이슈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영화제에 녹이고자 했다. 그래서 '난민'과 '이주여성'을 집중 조명해, 국가와 민족의 경계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모든 영화가 주옥같지만 남은 이틀 꼭 보셔야하는 작품은요."

한참을 고민하던 이 감독은 불가리아와 터키 접경지에서의 난민 수용이야기를 다룬 '굿포스트맨'과 아프리카 난민이 유럽으로 밀항하며 지중해 부근에서 겪는 여정을 판타지스럽게 표현한 '마지막 존재'를 꼽았다. 또 '디아스포라의 눈'을 '강추'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 자체가 어려워 영화제를 '그들만의 잔치'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좀 더 대중적인 영화를 디아스포라적 시선으로 재해석해봤다"고 말했다.

"남은 이틀도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 왔다가 영화 한 편 보자는 생각으로 들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