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13일 자정 무렵, 한 청년이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그는 다음날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당시 치안 본부장 강민창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발표했다.

그의 시신은 가족의 허락도 없이 벽제에서 화장되었다. 사건 수습을 위해 내무부장관에 임명된 정호용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느냐"며 고문 사실을 부정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그해 5·18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폭로했다. 이 사건은 그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6월9일 교문 앞 시위에 나섰던 이한열이 경찰이 조준 사격한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한 명의 청년은 심야에 고문실에서, 다른 한 명의 청년은 대낮에 길거리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6월10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군부정권은 6만명의 경찰을 투입했지만 시민들은 굽히지 않았다. 시위는 매일 이어졌다. 마침내 6월29일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약속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헌법에 반영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우리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다.

그런데 이번 주에도,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헌법을 고쳤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일일이 주울 만큼 투철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제도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우리의 일상을 바꿔야했다. 그럼으로써 정권이 아닌 국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었다.

/황해문화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