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마라톤의 도시?

 요즘 인천인들이 생각할 때는 `어 이게 무슨 소리야" 할지도 모른다. 92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 2001보스턴마라톤대회 이봉주 등 마라톤의 영웅들과 인천이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우리나라 마라톤에서 인천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마라톤에 대한 인천시민들의 열기는 가장 뜨거웠고 우수선수들도 무한히 배출, 한국마라톤을 이끌어갔다.

 해방 전부터 인천에서는 많은 마라톤대회가 열렸으며 이는 서울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당시 인천 파라다이스 오림포스호텔 옆에서 경인국도를 따라 부천을 거쳐 서울 오류동 노량진 용산 서울역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최적의 마라톤풀코스(42.195㎞).

 이때 인천~경성을 잇는 역전마라톤대회, 동아경인간 릴레이 경주 등 굵직한 대회뿐 아니라 작은 체육행사에서도 마라톤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또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인천수복 후 3·1절 기념 마라톤대회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어김없이 치러져 50회란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해방 이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을 하며 국민적인 자존심을 살린 서윤복 선생이 인천항을 통해 귀국, 엄청난 환영을 받은 것으로 일반인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대회를 앞두고 인천에서 인천마라토너들과 함께 합동훈련을 했다는 것은 모를 겁니다.”

 곽재영 인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분위기를 전했다.

 “전국에서 육상 최고의 명문고는 서울·양정·경복고와 인천의 인천공고였지요. 이들 팀은 인천을 쫓아오지 못했어요. 인천 마라톤이 전국을 휩쓸었고 이 기세는 70년대초까지 이어졌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 배를 움켜쥐고 운동장을 뛰었지만 서울서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경인선 기차를 타고 원정응원까지 갈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다고 곽 회장은 설명했다.

 60년 제31회 동아마라톤대회 월계관을 쓴 차대만 인천체고 교장은 “선수시절 당시 인천공설운동장에서 학년별 육상대회가 열렸는데 지금같이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인천시민들의 축제의 장으로서 대회장은 관중들로 꽉 차는 등 그 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59년 제1회 9·28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가 인천 오림포스호텔쪽에서 서울 광화문을 잇는 코스로 열렸고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다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인천이 80년대초부터 서서히 마라톤에 대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인천이 마라톤의 산실이었다는 점이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인천에서의 첫 공인대회인 제1회 인천하프마라톤이 열림으로써 이를 통해 인천마라톤을 재건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여론이 육상인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엄홍빈기자〉

hong61@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