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3·1운동 산실 … 국채보상운동 주도
▲ 수원지역 독립운동의 산실 수원종로교회 전경. / 김철빈기자 narodo@incheonilbo.com

광복 71주년 3·1절을 맞아 수원지역 독립운동의 산실인 수원종로교회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수원종로교회는 삼일학교 등에 가려져 역사적 가치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원 팔달구 북수동 행궁 앞에 위치한 수원종로교회는 수원 출신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1874~1930), 이하영(李夏榮, 1872~1952) 등이 참여해 설립한 삼일학교의 모태이다.

이들은 종로교회에서 국채보상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등 수원지역 독립운동가들과 궤를 같이했다.

1901년 12월 인천내리교회 교인인 이명숙이 선교를 위해 수원으로 파송된다.

그는 수원 북문안에 13칸짜리 초가집을 매입한다.

그리고 이명숙은 인근주택을 매입해 선교사 휴양관을 겸한 예배당(현 수원종로교회)을 설립하면서 수원지역 선교의 첫 발을 뗀다.

이명숙은 수원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면서 이하영을 만난다. 이때 이하영은 전통학문인 한학을 배우다 기독교로 개종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권정 연구사는 지난해 광복70주년 학술심포지엄에서 "당시 밖으로는 서양 및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와 침략을 당했으며, 안으로는 성리학 중심의 신분적 유교 체제가 심각하게 동요하며 균열 현상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던 시기였다"고 밝혔다.

이하영은 당시 "주를 믿는 사회적 악에 대항하는 투사가 되고자 기도하던 중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중생의 길을 시작했다"라고 교회회보에 글을 썼다.

종료교회 설립 당시 '배움을 통한 국가 독립일꾼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는데 의기투합한 인물들이 이하영과 의기투합한 인물이 임면수, 나중석, 차유순, 김제구 이성의 등이다.

이들은 교회와 남학교를 함께 설립한다. 이하영은 종로교회안에서 남학교 최초로 교사로 일해온 한문을 가르치며 학교명칭을 '삼일'(三一)이라고 짓는다.

그래서 수원종로교회 안에서 설립한 현재의 삼일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삼일학교와 삼일여학교이다.

서울 상동교회에서 만든 상동청년학원 출신인 임면수는 이하영과 함께 삼일학교를 함께 운영해 1906년 9월1일 심상과 고등과로 개편한다.

하지만 종로교회에서 운영하던 삼일학교는 1908년 북감리회 선교부로 학교의 경영권이 이양되지만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된다.

1906년 이 소식을 접한 지역의 부호 강석호가 거금의 장학금을 희사하고, 나중석도 부지 900여평을 기증하는 등 수원지역의 인사들이 동참해 삼일학교의 주춧돌을 놓는다.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의 산실도 수원종로교회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1908년 삼일학교 설립을 주도한 이들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민중계몽을 위해 기호흥학회 수원지회 설립을 주도한다.

1909년 6월 총회에서 55명이 지회회원으로 가입하는데 대부분이 삼일학교 교사나 졸업생들로, 수원종로교회 기독교인들이었다.

해방후 수원종로교회는 또한번 파란을 겪는다.

좌익활동을 한 종로교회 원로목사였던 이하영과 수원에서 우익단체를 조직한 정동운 담임목사가 격돌하게되고, 이후 수원지역 좌익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면서 이하영은 자연스럽게 수원종로교회를 떠난다.

지금도 화성 행궁앞에 수원종로교회는 암울했던 근현대의 역사를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다.

이하영, 임면수, 나중석, 김제구 등 좌우익의 이념을 넘어 수원종로교회를 거처간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잊지말아야 할 것도 그들이 물려준 땅에서 살고 있는 자들의 책무이다.


/홍성수·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