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길모(74·미국인)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는 약관의 나이에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넜다.

 "한국 하늘에 영광을 한국 땅에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으로부터 47년전… 그의 나이 27세때 일이다.

 그 후 지금까지 인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설파하며 성직자의 길을 걸어왔다. 때론 거룩하게 때론 정열적으로. 그렇게 지금은 35만 인천지역 신자들의 "별"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인천은 내 고향입니다.” 만두를 너무 좋아해 스스로 "만두 중독자"라고 말하는 나주교는 자신은 한국사람, 특히 인천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은 먼지가 많이 날리는 회색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젊었고, 정겨운 한국풍습이 좋았습니다.”

 나주교는 1948년 미 뉴욕시 메리놀 신학교를 졸업하고 54년 미 예일대 한국어과를 수료한 뒤 선교를 위해 한국에 왔다. 처음 충북 장호원천주교회 보좌신부로 있던 그는 61년 지금의 답동성당에 인천 초대교구장으로 부임했으며, 지금까지 인천사람들과 동고동락해왔다.

 40여년간 한 자리를 지키면서 인천지역의 변하는 모습을, 인천에서 펼쳐지는 민주화운동을 관심있게 지켜봤으며 가깝게는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농성 등 성당안에서 이뤄지는 농성에 대해서 지지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고자 애써왔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부자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쪽에 더 진실이 많다고 믿고 있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윗사람들이 잘못했습니다. 단 대화를 통한 해결이 필요합니다.” 그는 대우차퇴출 등에 따른 실업문제 등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몸을 불리기 위해 분수에 맞지않게 빚을 끌어들인 사주와,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한 당국자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새해엔 이웃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며 삽시다.”

 사랑의 마음이 백발로 피어난걸까. 백발이 성성한 노신부는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천국은 하늘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펼쳐질 것이라며 천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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