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을 느낄 때가 있다. 목이 마르다. 가슴까지 타서 시원하게 퍼부울 빗줄기를 기다릴 때가 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마련한 "박물관 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의 사찰건축,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천문세계관, 천년의 꿈 미륵의 꿈, 조선시대 궁궐이야기, 우리 옛그림 감상법, 우리 고미술 되살피기라는 강의 주제와 강사진을 보니 가슴이 설렌다. 이렇게 근사한 강의가 무료? 게다가 야외답사와 탁본 실습까지! 8주차로 진행되는 박물관 대학 일정은 마침 가을 한 복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더 가슴 부풀게하는 조건이었다.

 청량산 기슭을 향하는 발걸음은 늘 즐거웠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한 시간 강의와 한 시간 슬라이드 상영. 박물관 강의는 빛 바랜 돌과 절, 탑, 그림, 초상화로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예술, 그리고 선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비추어 주었다. 많은 걸 퍼부어 주시고자 열강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으로 황무지에 파란 풀이 하나씩 올라오는 듯 했다. 배우지 않는다면 16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들의 세계관을 얼마나 볼 수 있겠는가. 학창시절부터 단골 약속 장소로 잡던 곳이지만 경복궁, 덕수궁에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얼마나 감지하겠는가. 김홍도가 그린 "씨름"에서 얼마나 낱낱이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을 뜯어 보겠는가.

 그 동안 많은 걸 보고도 아무 것도 못 본 청맹과니는 부끄러웠다. 책도 더 읽으면서 공부 좀 하면서 강의를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내 손으로 숟가락질해서 밥 떠먹지 않고 떠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부끄러움보다 앞서는 건 새록새록 알아가는 기쁨이었다. 그렇다고 보고 들은 것을 출력할 만큼 제대로 저장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능 떨어지는 386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미농지 뒤의 그림처럼 희미하게 스케치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여주 고달사지로 답사를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답사 소감을 발표할 때 나는 박물관을 다니고 고적 답사를 다니면서 물음표만 늘어간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느낌표를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사실을, 하나를 알게 되면 아홉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게 된다"고 학예사님이 가슴 찌르는 소리를 하셨건만 아직도 내 가슴에는 온통 물음표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 빈약한 지식과 얄팍한 소견을 써먹으려고 했다.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해설하는 봉사자로 참여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식해서 용감하게 나선 것도 아니고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배움을 연장하고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박물관에서 입은 은혜에 봉사라는 이름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을 쪼갤 수가 없었다. 자원봉사자 발대식에서 사진까지 찍었는데 세상 일은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어찌하였던 지난 가을을 나는 참으로 멋지게 보냈다. 지적 욕구인지 출가 욕구인지 모를 갈증도 치유하고, 가을앓이도 하지 않고 10월·11월을 넘겼다. 메마른 가슴에 일년초도 몇 포기 심었다. 그런데 내년 가을에야 이런 호사를 다시 누릴 수 있다는 게 아쉽다. 한 학기 3학점 강의쯤 되어야 굵은 둥치를 가진 나무로 키울 수 있지 않겠는가. 1년에 한 차례 정도는 더 심도 있게 김일권, 조훈철, 최근성, 주강현, 임학성, 견수찬, 홍순민, 윤열수, 오주석 선생님 그리고 김상열, 배성수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고 싶다. 그리고 내년에는 전폭적이고 획기적인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져 박물관 강당을 올리는 첫삽을 뜨게 되면 얼마나 좋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