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2세 시대에는 시장이 여러채나 되는 유곽을 소유하고 있었다. 음란한 신사들은 그 유곽에서 시장의 손을 거쳐 들어온 플랑드르 지방의 미인들과 거래할 수 있었다. 헨리6세는 1442년 12군데나 되는 유곽에 영업면허를 내주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매춘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런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일찍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홍루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상당한 실력자들이 이권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한 저자는 앞서와 같은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매춘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사원이나 신전에서 성행했는데 특히 고대 그리스 사회는 더했다. 로마시대에는 목욕탕이 매춘의 장소였다. 지금도 폼페이 유적에서 당시의 장소가 발굴되고 있다. 목욕탕 매춘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가벼운 옷차림의 입욕이라지만 남녀혼욕이란 이름으로 공공연히 매춘이 행해졌다. 16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퓨리탄적 정신이 부도덕으로 규정했다.

 유대지방에서도 매춘은 있었던 듯 하다. 구약성서에 이를 금하는 교훈들이 실려있다. 선지자들이 신을 배신하는 행위를 창녀에 비유한다. 사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중에 잠입할때 도움을 준 장본인은 기생 라헬이었다. 예수께서 매음녀에게 보여준 동정심은 유별나다. 회개한 여인에게 제사장 보다 먼저 천국에 이른다고 했으며 음행하다 붙들린 여인을 도와준다. 즉 돌을 들어 치려는 군중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치라."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매춘은 성행하고 있다. 아무리 근절한다며 단속을 강화해도 문란은 여전하다. 매춘의 원인이 빈곤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밤거리에 명멸하는 찬란한 불빛 만큼이나 환락에 빠져 윤락길에 나서기도 한다. 윤락녀 설문조사중 스스로 선택했다는 답변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거의가 3년내 전업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미용사 등 자영업을 희망한단다. 비록 처지는 그럴 망정 수렁을 헤쳐 나오려는 몸부림에 누가 돌팔매를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