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전 나는 인천으로 일터를 옮겼다. 흔히 말하는 IMF실직자나 구조조정의 부산물(?) 신세로 온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멋진 신세기를 향하여 기수를 돌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천예찬론자가 되었다.

 70~80년대 오글목사추방사건을 비롯해 답동성당기도회며 동일방직·대한마이크로사건 등 시국문제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한 굵직한 사건들이 인천에서 일어났다. 요즘도 굴업도핵폐기물반대사건, 굴포천살리기 등 여러 문제들이 인천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순수 시민들이 주인인 새얼문화재단이 있다. 각종 문화예술 공연이 줄을 잇고 있고, 거리에는 서예 사진 미술 연극등 공연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인천시청 로비에는 정오공연이 있고 지하철역에서는 미술전시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인천을 문화운동권이라 부르고 싶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문화를 배운다. 문화는 경쟁력이며 생존전략이 된다.

 지난 90년 나는 서울에서 여성자원금고(Human Resources Bank)를 설립, 여성능력의 부가가치를 올리자고 텔레마케팅, 세무사무원 등 여성유망직종을 개발해서 관심을 끈 바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서울시로부터 서부여성발전센터를 위탁받아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시한번 일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인천여성문화회관을 위탁운영하게 되었다.

 처음엔 난관이 많았다. 턱없이 적은 예산이며 더구나 2000년 교육비는 모두 시금고로 가져가고 3개월(10~12월)을 덤으로 운영해야 하는 조건은 커다란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모르는 교육생들은 교육비를 돌려달라고 하면서 자퇴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우자동차에 관계된 남편들이니 아무래도 영향이 큰 것같았다.

 더구나 여기저기 노후된 시설이 말썽을 부렸다. 에어로빅실은 천장이 가라앉고 조리실은 하루가 멀다하고 하수구물이 역류하며, 창문이 안잠긴든지 탈의실문이 떨어졌다느니 샤워꼭지가 불량이라느니…. 그래서 인천시에 보고하고 부지런히 고치고 이미지변신을 시도하는 중이다.

 사무실 책상위 노후된 전화기가 교체됐고 전화선 공사도 다시했다, 남성전용화장실이 여성용의 두배가 되던 풍경은 이제 여성전용으로 성전환(?)을 했다. 수위실은 교육안내 상담실로 바꾸었고 도서실 일부를 개조해 강의실로, 작업실은 녹색가게로, 창고나 다름없던 방은 부평자활후견기관에 무료로 빌려주었다. 이제 봄이 되면 남향의 넓은 마당은 야외공연장으로, 죄우 양쪽의 정자는 노천카페로 탈바꿈될 것이다. 정교수와 실습강사제를 도입하고 공식 오디션을 통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단원을 충원할 것이다. 그밖에도 겨울방학 특강 열랴, 김장김치담가 이웃에 나눠주랴, 송년음악회준비하랴, 종횡무진 바쁘다.

 부평 상가는 문을 닫은 집이 많다. 짧은 시간이지만, 인천여성문화회관 주변을 둘러본 소감은 "어떻게 이곳에 희망을 줄까"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승리자가 되는 길을 밤낮으로 고민한다. 보다 넓게 보다 다양하게 그리고 더욱 즐겁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발휘하고자 한다. "정직하고 따뜻한 사회의 징검다리가 되어 여성의 감성으로 새인천을 꾸며보자" 건물외벽에 내건 구호처럼 의식있고 깨어있는 여성을 키워내는데 힘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