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객원교수

메르스를 퍼뜨렸다고 해서 낙타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낙타 역시 이 바이러스의 숙주에 불과할 뿐, 인간을 감염시키려고 일부러 기침을 하고 다닌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낙타에 비유하면 어느 쪽이 모욕을 느낄지 모르지만 낙타와 달리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세균보다 더 더러운 막말을 내뱉는 터라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어찌 보면 이번 메르스 사태의 덕을 본 유일한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막말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정치인들이 아닐까. 온통 관심이 메르스에 쏠린 덕에 그들은 사회적 지탄의 과녁에서 슬쩍 빗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감염된 소수의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고 끝나지만 정치인들의 망언은 불특정 다수 국민의 정신을 오랫동안 피폐하게 함으로써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만만치 않다.

얼마 전 또 한 번 실력발휘를 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 같은 분은 거의 해마다 막말로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이 분야 고수다. 그렇게 범국민적 비난을 받고도 막말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는 난치성 언어장애증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메르스야 한 두 달 기승을 떨다가 사라지겠지만 정치인들의 막말은 사시사철 지속되고 있으니 이 병은 이미 국회라는 지역의 풍토병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지난주 이종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비판하자 "대통령이 너무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의 거친 말에 비판이 쇄도하자 "호들갑이란 원래 예쁜 말"이라고 정의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호들갑이란 '경망스럽고 야단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말한다.

얼마 전 그는 "요새 공무원들이 대통령을 닮아 헌법 공부도 안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는데 그의 말을 빌어 얘기하자면 호들갑이란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그는 국어공부도 안한 것 같다. 미국 철학자 에머슨은 "말은 남 앞에 그리는 자신의 초상화"라고 했는데 과연 그는 자신이 어떤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지나 알고 있을까.

그는 일찍이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글로 옮기기 힘든 욕설을 함으로써 이 분야 일인자로 등극했다 "(공천장사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X 서슬이 퍼래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라고 말해 세상을 경악시킨바 있다.

그는 비난이 쏟아지자 "그 X은 '그녀는'을 줄여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말이 옳다면 만일 유권자가 그에게 "댁의 그 X은(그 녀는) 잘 계신가요"라고 인사를 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렇게 수준 낮은 정치인의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천박한 단어를 여성 대통령 후보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 모습을 외국인들이 볼 때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이 정당의 막말 역사는 그 근원이 한참 위로 올라간다. 상대 정당 사람들을 향해 "공업용 재봉틀로 입을 쫙 박아버려야 한다"고 한 의원도 있었고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선정된 분에게 태어나선 안 될 존재, '귀태(鬼胎)'라고 한 의원도 이 당 소속이었다.

"장차관과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은 이명박(현직 대통령)의 휘하 졸개들"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이도 이 당 소속이고 국회에서 답변하는 장관에게 "당신이 시장에 나타나면 재수없다고 그런다"는 말을 한 선량도 이 쪽 분이다.

최근에는 이 당의 최고위원이 다른 최고위원에게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했는데 그는 사실 이 정당의 막말 역사에서 가장 순한 말을 했는데도 직무정지라는 가장 심한 징계를 받은 사람이 됐다.

이 정당의 회의에서는 "닥쳐 이 ××야", "너 인간 맞아", "한번 붙어볼래" 식의 욕설을 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마침내 이 당의 대표도 막말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을 하자'는 소름끼치는 말을 해서 이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정당이 집권했을 때 국무회의를 상상하면 나라가 참 걱정된다. 먹을 것이 많을수록 더 사나워지는 것이 이런 부류 사람들의 특성이라 걱정은 더 커진다.

정치를 파장으로 몰고 가는 이런 말을 하는 성격은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을 때 가장 잘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잊혀 질것이 두렵고 초조해서 고함을 지르는 식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려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유난히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언론에 나쁜 기사라도 자주 회자되면 유권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고 믿는다. 유권자의 수준이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을 한정한다는 일부 정치학자들의 믿기 싫은 주장은 사실일까.

바이러스는 뱀의 독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뱀독과 같은 막말은 메르스보다 훨씬 오랜 기간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이 땅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치유하는 유일한 처방은 그런 정치인들을 유권자가 기억하고 심판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