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라는 섬이 지금 인천에는 없다. 60년대 그곳에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느라 서구 신현동에서 부터 연륙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북항 조성으로 인해 그 일대가 매립되어 율도의 형태를 찾아내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발전소의 시설과 더러 퍼렇게 숲이 보이는 쪽이 원래의 율도가 아니었겠는가 여겨질 뿐이다.

 그러나 50년대만 해도 율도는 주민들이 바깥 나들이 할때 작은 전마선에 의존 화수부두로 출륙했을 뿐 어쩌다 섬밖에서 찾아가는 길손이라도 있을 경우에는 천상 바닷물이 나가는 간조 시간에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로 해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신현동 끝머리에 있는 폐염전에서였는데 중간쯤에 겨우 바닷물이 넘치지 않을 만큼의 얕은 육지에 아마 포도밭이 있지 않았었나 추억된다.

 갯벌을 건너느라 거의 탈진할 무렵에 닿게 되는 율도-그곳을 속칭 밤염이라고 했다-에 들어서면 제법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육지학교의 분교라는 교실 두어칸에 운동장을 갖춘 학교도 있었다. 그곳에 임진왜란을 예견한 중봉 조헌 선생이 가족들을 피난시켰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렇던 일대가 천지개벽하듯 된 것은 북항이 등장하면서이다. 날로 협소를 더해가는 항만기능의 확산책으로 원목의 저목장 정도로나 이용되던 황무지의 매립이 촉구되었다. 특히 지난 97년부터 영종도의 신공항 건설자재와 인력을 수송하기 위한 기지가 되자 더욱 자극 받았다. 오늘날 이곳을 오가며 광활한 평지가 아니었다면 공항이 필요로 하는 물류기지를 어찌 확보했을까를 생각케도 한다.

 어쨌든 지금 율도선착장이라는 이름의 그곳 부두에서는 수시로 영종도행의 카페리가 오간다. 정기항로가 아니라서 시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기존의 도선장인 비좁은 월미도에 비해 구역이 넓어 여유롭다. 다만 대중교통시설이 없는데다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아 일반 시민들의 접근과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까지의 시내버스 운행이 시작되었다. 동암역에서의 42-1번 노선이다. 또하나의 율도행 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