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톤 대형덤프트럭 운전경력 7년. 인천은 물론 수도권 각종 공사현장을 누비며 그이는 골재를 실어나른다. 차체 무게와 적재물 때문에 팔과 다리힘이 승용차에 비해 몇 배 이상 더 필요하고, 진흙탕 고갯길 웅덩이 험한 곳만 다녀야 하지만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단다.
큰 차 문이 열리고 그이가 내리는 순간, 공사현장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다 놀란다. 멋있는 커트머리에 고운 화장, 선글라스, 밝은 캐주얼 옷차림. 여자라는 사실때문이기도 하지만, 먼지속을 달리면서도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센스에 더 놀라워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자라며 힘든 일 남자에게 미루고, 약한 모습 보인적 없어요. 남자들도 오르기 두려워하는 수십미터 싸이로 위에도 먼저 올라가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꼭 지켰습니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라서…라는 망설임은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가정경제를 위해 남편 권유로 시작한 트럭운전. 지금 소속해 있는 회사에서 첫 발을 디딜 때는 소형트럭을 운전했는데, 사장의 신뢰를 얻어 대형트럭으로 바꿨다. 10여명 넘던 트럭기사가 IMF로 모두 떠났을 때도 그이는 유일하게 남아 일을 했다. 현재는 새벽 4시 출근에 밤 6시 귀가도 빠듯할 정도로 일감 많은 최고참 기사가 되었다. 하루평균 이동거리가 무려 500㎞에 이른다.
초기엔 소화불량,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 등 직업병 증세가 있었으나, 일에 적응하자 오히려 팔 다리가 튼튼해지는 등 더 건강해졌다. 하지만 직장을 가진 여느 엄마처럼 그이도 아이들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안쓰럽다. 『새벽에 도시락 싸놓고 밥차려 놓으면 초등학교 다니던 애들은 스스로 먹고 챙겨가곤 했어요.』 그러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내 집도 장만했다.
그이는 5년정도만 일하고, 그 후부터는 장애아·고아 같은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손미경기자〉 mimi@inch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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