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감현장에서 일어난 '노익장 폄하' 발언에 대한 파고가 높다.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설훈 위원장이 '낙하산' 논란을 빚으며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된 78살 자니윤(본명 윤종승)씨에 대해 "고령이니 쉬라"고 한 것이다.
윤 감사의 업무 능력 또는 자격에 대한 시비가 아니었다. 고령의 나이를 문제 삼는 국회에서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대한민국 노년의 희망은 이미 싹트지 않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나이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노인인권마저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유린됐다는 파장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은 쇠락한 존재, 무력한 대상으로 치부되는 시대는 지났다. 젊은 세대 유용론과 같은 섣부른 사회적 기준은 지혜로운 노인 세대의 약진을 가로막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올해 90세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노익장을 나이로 폄하할 수 없다.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말년에 빛난 정치 역량과 99세에 등단한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도 노익장이다. 95세 죽는 순간까지 피터 드러커 교수는 배우고 가르치며,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송해, 이순재 씨에게 고령이라는 이유로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독선이다. 노년기를 '발달과 변화'의 시기로 규명한 에릭슨, 헤비거스트, 베일런트 등 전생애발달 이론가들이 보면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나이를 극복한 인생은 수없이 많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발달하기 때문이다. 발달은 일방적인 성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쇠퇴가 동시에 따르는 다방향성의 특징을 지녔다. 노년이 되면 신체의 노쇠를 겪게 된다. 하지만 기력 상실의 허망함을 인생의 지혜와 경륜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울 뿐이다. 잃고 얻는 변화가 발달이고, 노년기 역시 발달의 한 과정이다.
보통 사람들은 일생 동안 1~2% 정도의 정신적 잠재력만을 활용한다고 한다. 노년기 인생의 종착역까지 계발 가능한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로서 노년기에도 새로운 일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다.
국감에 선 윤 감사는 자신의 건강검진 신체나이가 64세라고 했다. '옆차기, 돌려차기도 할 수 있다. 요즘은 100세 시대다'라고 항변했다.
그동안 신체의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의학 기술과 기대여명을 추정하는 통계적 접근에 따라 현재의 건강상태와 노화의 정도를 제시해 왔다. 스마트 워치, 스마트 글라스와 같은 착용 가능한 웨어러블 컴퓨터의 발전 속도가 빠른 세상이다. 수명과 관련한 모바일 응용 기기도 발명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의 발명가 프레디릭 콜팅이 '티커'(Tikker)라는 '데스 워치'(Death Watch)를 발명했다고 보도했다. 남은 인생의 시간,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알려준다는 시계다.
보도된 사진에 나타난 한 사람의 남은 인생은 '35년 5개월 17일 10시간 6초'를 나타내고 있다. 죽음의 시점을 초 단위까지 설정하고 거꾸로 가는 인생의 시계인 셈이다. 개인의 '운동량과 몸무게, 음주나 흡연 습관뿐만 아니라 과거 의료기록과 암, 당뇨병 등 가족력, 미미한 알레르기 증상까지 포함'한 기본 데이터를 입력하게 된다고 언론 매체는 소개했다.
단순한 역연령(曆年齡)으로 노인의 역량을 판단하는 일은 노인 세대의 공분(公憤)을 피할 수 없다. 순간순간의 노력에 따라 개인의 사망 추정 일시를 연장할 수 있게 고안된 '데스 워치'가 노인 세대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해피니스 워치'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형수 인천금빛평생교육봉사단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