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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 프랑스의 왕과 왕비와 장관, 그리고 파리 경시총감과 탐정 뒤팡, 이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날 왕비는 누군가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되고, 이 편지를 받고 나서 왕비는 무척 놀라게 되는데, 이 표정을 지켜본 장관은 직감적으로 이 편지가 왕비에게 무척 중요한 편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급기야 왕비의 편지를 훔쳐가 이 편지를 빌미로 장관은 왕비를 압박하며 자신의 권력을 키우게 되고, 왕비는 파리 경시총감을 불러 장관이 훔쳐간 편지를 되찾아 오도록 했지만, 장관의 집을 샅샅히 뒤지고도 결국 편지를 찾아내지 못한 경시총감은 탐정 뒤팡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뒤팡은 장관의 집에 들어가 벽난로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편지를 찾아 나오게 되는 간단한 스토리다. 하지만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깡(Jacques Lacan)에 따르면, 이 간단한 단편의 스토리는 결코 간단치 않은 철학적 함의와 정신분석학적 장치들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라깡에 따르면, 단편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주인공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인물유형을 상징한다. 먼저,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조차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분별없는 익명의 대중을 상징하는 왕,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는 인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런 전략을 세우지 못하는 왕비, 이런 왕과 왕비와는 다르게 현실의 변화를 재빠르게 감지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찾는데 골몰하는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현실주의자 장관, 하나의 일정한 원인이 주어지면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통해서 반드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근대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경시총감, 그리고 라깡의 표현대로 하자면 "합리적으로 대처할 만한 상황에 시적으로 대처한" 탈근대적 사고를 가진 탐정 뒤팡이 그들이다. 왕과 왕비와 장관, 그리고 장관과 경시총감과 탐정 뒤팡의 관계의 매개가 되는 편지에 관한 각각의 두가지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면서 라깡이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진리라고 하는 것은 이 편지처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정작에 그런 진리는 결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정말로 그것은 현대인들이 믿고 있는 대로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라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작 에드거 앨런 포가 작품 어디에서도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저 막연하게 이 편지가 뭔가 중요한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언어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 기의(signifie)보다는 기표(signifiant)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 사람들은 그저 그 기표만으로 의미를 '짐작'해내고는 거기서 그친다는 것, 라깡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정작 도둑맞은 것은 '편지'가 아니라 '무의식'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산되는 새로운 정보가 기존의 정보를 은폐시켜 버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제기되는 새로운 논쟁이 기존의 논쟁을 종결지어 버리는 업데이트 사회(update society)일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편지'가 아니라 '무의식'이다. 어떠한 사회적 논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현상'에 치중하다보면 '본질'을 놓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