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분원 사기방아 여주이천 자채방아」-예전에 유명했다는 광주의 사기그릇과 이천의 자채쌀을 읊은 민요이다. 이천 구만리 들에서 나는 자채쌀은 미질이 좋아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미였으며 광주분원에서 굽는 사기 그릇은 정교하고 질이 우수하여 대궐용이었다고 한다.

 분원이란 조선조때 대궐의 공궤를 맡았던 관아인 사옹원의 분원을 이른다. 그 분원이 세조때부터 광주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특히 왕실용 백자를 구웠으며 질이 좋아 분원이 고유명사 처럼 되었다고 한다. 성현(成俔)의 용제총화(췈齊叢話)에도 질그릇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사기그릇은 백토를 섞어 만들어야 좋고 분원의 그릇이 가장 정교했으며 봄부터 가을까지 사옹원에서 관리를 보내 감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광주분원의 위치는 지금의 팔당댐 안쪽 경안천이 흘러드는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이다. 이곳 퇴촌 초월 남종면 일대가 모두 분원사기로 알려진 백자가 만들어지던 곳이다. 지금도 분원리 일대에선 어디서나 쉽게 가마터와 깨진 사기조각들이 발견된다. 이곳이 백자의 산지가 된 까닭은 수운에 편리한 한강가였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강원지방의 원료를 실어오고 제품의 서울 반출이 용이한 위치였다.

 조선조말 고종때 출간한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분원사기의 원료로 광주수토 1천4백석 양구백토 510석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연간생산이 1천3백72죽이라고 하고 있다. 죽(竹)은 대접이나 접시 따위를 세던 단위요 열개가 한죽이니 1만3천여개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생산비용은 한강을 통과하는 뗏목에 세금을 물려 충당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백자산실 광주에서 지금 도자기축제가 열리고 있다. 왕실용의 도자기를 향토에서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인데 국보도자기재현전과 사기마제막 사기그릇 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리라 한다. 지금도 광주군 일대는 옛 전통을 재현하는 가마터가 여러곳 있다. 향토의 뿌리찾기는 향토애를 제고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