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둘레길 12~14코스
   
▲ 12코스에 위치한 인천개항박물관(구 조선은행)


12~14코스는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바닷가에 있어 비린내를 맡으며 1960~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옛 포구도 만날 수 있다.

특히 골목길과 달동네, 우리나라 근대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옛 추억을 더듬어 보면서 근·현대의 아픔을 살펴 볼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있다면 부모세대 모습을 추억과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가족들이 걷기 편한 곳이기도 하다.

13~14코스는 둘레길 중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됐다.

13코스는 지금도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알려진 월미도 일대를 돈다.

14코스는 인천인들이 외지, 특히 서울사람들에게 조심스레 소개하는 인천의 맛골목이기도 하다.

13~14코스를 돌아보면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바닷물을 손에 대기 힘든 인천의 역사도 알 수 있다.



12코스 - 근대화 포문 연 '제물포' 개항역사의 현장

13코스 - 외침 각축장 … 산과 바다 어우러진 월미도

14코스 -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배경지로 유명



▲12코스-성창포길

우리나라 근대문물은 이 곳에서 시작됐다.

외세 침탈에 의한 강제 개방이지만 이 또한 역사다.

인천은 근대화의 중요한 보루였다.

12코스는 인천개항의 역사와 핍박의 삶이 혼재된 길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곧잘 쓰이는 제물포는 본디 지금의 중구 중앙동·항동 일대에 있던 작은 포구였다.

1883년 개항이 되자 일본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 조계를 만들고 조선침략을 위해 상권을 확대함에 따라 동네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된다.

그 뒤 인천의 중심은 원래 도호부가 있던 지금의 남구 관교·문학동 일대에서 제물포지역으로 점차 옮겨갔다.

제물포는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제물포는 지금의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넓게는 중구와 동구 지역을 뜻한다.

제물이라는 말은 조선초기부터 이곳에 있었던 수군 기지 제물량에서 비롯됐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제물량만호는 인천군 서쪽 성창포에 있다"고 했다.

인천항의 옛이름은 성창포였고, 제물포는 그 안에 있는 작은 나루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곳이 배가 드나드는 포구라는 점에서 제물은 '물을 건넌다'는 뜻이라 짐작된다.
 

   
 


●12코스는 …
◇총길이 5㎞, 1시간20분 소요
◇코스 : 동인천역 → 중앙시장 → 배다리사거리 → 답동성당 → 신포시장 → 홍예문 → 자유공원 → 송월장로교회 → 공화춘 → 개항박물관 → 제물포구락부 → 자유공 원 → 삼국지 벽화거리 → 인천역
◇대중교통 : 버스 - 간선 4·6-1·22·24·28·29·112·306·307, 지선 506번 동인천역북광장 하차
지하철 - 1호선 동인천역 4번 출구


▲13코스-월미도길

평화롭게 걷고 싶은 길이다.

13코스는 동적인 면과 정적인 면이 상존하는 곳이다.

청년의 문화공간과 조용한 숲이 서로 다른 공간을 제공한다.

월미도는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특히 외세의 침략 근거지로 이용된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월미도는 고려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길목에 위치했다.

그래서 구미 열강도 월미도를 기점으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서울을 위협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월미도가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로제섬'이란 치욕적 이름을 얻은 것도 이 무렵 일.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인천이 강제개항(1883년)되자 월미도는 외세침략의 본거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904년 일본은 월미도에 순환도로를 건설하고 해군기지와 석탄창고, 급수소 등을 설치했다.

이어 러시아도 이 곳에 저탄고를 세웠다. 개항 초기부터 일본과 러시아 같은 나라에 의해 부대끼다가 일제시대에는 수도권의 관광명소로 유명했던 월미도는 한국전쟁 참화를 겪으며 연합군의 함대 포격으로 초토화한다.

거의 민둥산이었던 곳에 부대가 들어서고 군에서 통제해 반세기 동안 숲이 무성하게 변해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2001년이다.

월미공원에는 산림지역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해 총 249종류의 식물이 자라며, 도마뱀과 다람쥐 등 우거진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 많이 산다.

월미공원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그 역사성 또한 높다.

월미도는 자연생태·역사·평화공원으로 시민 가슴에 자리를 잡고 있다.

●13코스는 …
◇총길이 4.8㎞, 1시간20분 소요
◇코스 : 인천역 → 대한제분 → 월미공원 정문 → 월미문화의거리 → 월미테마파크 → 월미공원(돈대삼거리 - 한국이민사박물관 뒷길-만남의광장사거리-정문)
◇대중교통 : 버스 - 간선 2·15·23·28·45·720번, 좌석 306·307번 인천역 하차
지하철 - 1호선 인천역 1번 출구


▲14코스 - 부두길

14코스에는 비릿내가 있다. 비리한 냄새가 코를 흔든다.

바다다운 바다가 있던 곳이다.

바다는 그 곳에 그대로 있었지만 사람이 외면하고 버렸다.

1879년에 완성된 화도진도를 보면 괭이부리는 북성포 화평동구름다리 만석동 일대 터진개로 바다 갈매기인 괭이부리와 지형이 닮아 있다.

그와 흡사 한 곳이 호구포로 지형이 호랑이 입과 닮았다.

이 동네에서 그 유명한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왔다.

작품 무대가 된 만석동과 주변 구도심지는 어린 시절 우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동화 속 김명희 선생은 영호 삼촌에게 "나는 어릴 적에나 사춘기에나 모두 헛 산 것 같아. 난 뒤돌아볼 추억 같은 게 하나도 없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역시 살던 곳, 다니던 학교에서 탈출하는 꿈을 꾸며 살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그 시간과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이 턱없이 적다.

김중미 작가는 "세상을 향해 사람들이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앞서 가려고 누군가의 것을 뺏거나 짓밟는 일이다. 때로는 결핍이 사람을 더 넉넉하게 해준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문학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 이들에게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그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할 것인가.

아이들을 그저 자신만 아는 정서적 불구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설은 여전히 필요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만나러 가보자.

●14코스는 …
◇총길이 8.6㎞, 2시간20분 소요
◇코스 : 인천역 → 대한제분 → 북성부두 → 동일방직 → 만석동주민센터 → 화평동냉면거리 입구 → 민들레국집 → 화도진공원 → 만석초등학교 → 만석부두 → 두산인프라코어 → 화수부두 → 송현초등학교 → 동인천역
◇대중교통 : 버스 - 간선 2·15·23·28·45·720번, 좌석 306·307 번 인천역 하차
지하철 - 1호선 인천역 1번 출구

/김칭우기자 chingw@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