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쓸데없는 걱정말고 젊은 놈답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문화견문을 넓혀. 그렇게 겁 많은 놈이 어떻게 사선은 넘어 왔어?』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모습이 하도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꾸짖었다. 인구는 그래도 별로 고까운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씨익 웃고 말았다.
『하이구 형님도…철책선 넘을 때야 어디 내 정신으로 넘어온 줄 아십니까?』
정동준 계장은 인구가 제법 서울 말 흉내를 내며 북쪽에서 경어로 쓰는 『∼네까?』 투의 종결어미를 쓰지 않는데 대해 변화를 느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며 또 꾸짖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돈 좀 아껴 쓰고 친구들한테 빌려 준 돈은 꼭꼭 받는 습관을 길러. 너 그런 식으로 돈에 무관심하게 살다가 나중 결혼해서 처자식 어떻게 먹여 살릴 거야?』
인구는 자신의 약점을 꼬집는 정동준 계장의 꾸지람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자신도 어느 때는 그것이 체질화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면서 또 히죽이 웃었다.
『저도 사실 무척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저쪽에 있을 때는 돈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정치적 생명에만 매달리면서 살았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이 녀석아! 친구가 어려울 때 빌려준 돈은 약속한 날짜에 받을 줄도 알아야지…친구가 딱하다고 그냥 놔두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야 아직은 돈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닙니까?』
인구는 돈 따위 이야기는 정말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는 듯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구멍가게로 달려가 4홉들이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왔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가 소주를 즐겨 마시는 것도 못 마땅해 나무랐다.
『술 먹고 싶으면 맥주나 몇 병 사오지 왜 또 소주냐?』
『저는 북에서도 계속 소주만 마셨어요.』
인구는 그러면서 식당방으로 들어갔다. 정동준 계장은 냉장고 속에서 양념에 깻잎 재어놓은 밑반찬과 소주잔을 쟁반에 받쳐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인구를 바라보며 버릇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정서나 습관으로는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 마지못해 사서 마시는 술이 소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인구는 돈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맥주보다 좋은 술이 소주로 고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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