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지와 부엌 새간은 인숙이와 내가 챙길 테니까 당신은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아래층으로 내려가 백창도 과장한테 인영이 부탁부터 하고 오시라요.』

 곽병룡 상좌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왔다. 그때 도 안전국에서 나온 안전원들이 아파트 나들문을 반쯤 열어놓고 집안의 동정을 살피며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곽병룡 상좌는 문득 안전원들을 저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의 명령을 받고 나온 특수구루빠 소속의 안전원들은 그들 가족이 신풍서군으로 옮겨가 이삿짐을 풀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으며 안전을 보장해 줄 사람들이므로 무엇이든지 요깃거리가 될만한 음식이라도 대접하면서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놓아야 그들 가족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병룡 상좌는 다시 살림방으로 들어가 안해를 보고 말했다.

 『지난번 4·15(김일성의 생일) 때 받은 선물상자 한번 열어 봐.』

 『갑자기 선물상자는 왜 찾습네까?』

 『도 안전국 동무들이 우리 가족들 때문에 저렇게 바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담배하고 먹을 것 좀 차려 대접부터 하라우. 남들 보기에는 야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전직 안전부장 집 살림을 날라주러 나온 동무들인데 우리가 모른 척 하고 가만히 있으면 미움 받게 돼. 물건에 욕심내지 말고 담배 남은 것, 술 있는 것, 과일간즈메(과일통조림) 선물 받은 것 몽땅 끄집어내어 대접하라우. 오마니 잡수시라고 사다놓은 사탕과자도 한 봉지만 남겨놓고 모두 다 나눠 줘. 아이들 갖다 주라고 하면서 말이야….』

 『이 량반이 어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와 애지중지 모아놓은 귀한 물건들을 죄다 끄집어내어 남 줄 생각만 합네까? 신풍서군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사탕 한 알씩이라도 나눠먹어야 곁을 주지, 길치 않으면 우물이 어디 있느냐고 말 한마디도 묻지 못합네다. 기런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니 빨리 아래층에나 다녀 오시라요….』

 『어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당으로부터 이주명령서를 받은 세대는 이웃 사람들과 대면을 못하게 안전원들이 문 앞에서 저렇게 지키고 섰는데 내가 어케 백동무 집엘 자유롭게 갔다올 수 있는가?』

 정남숙은 그때서야 자기 가족 전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는 연금상태나 다름없는 신세라는 걸 깨닫고는 세대주가 시키는 대로 고이 보관해 놓은 물건들을 꺼내 상부터 차렸다. 그리고는 인숙이와 같이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삐죽이 고개를 들이밀고 집안을 살피던 특수구루빠 소속 안전원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음식상을 지켜보았다. 고위간부들에게나 공급되는 려과담배(필터담배)와 사탕과자, 그리고 과일 통조림과 강냉이빵이 금새 침을 넘어가게 했다.

 『모두들 안으로 좀 들어오시라요. 지난 4·15 명절 때 선물 받은 술이 한 병 있으니까니 우리 기거라도 한 잔씩 나눠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