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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운명을 결정지은 러·일전쟁은 인천 앞바다에서 시작되었다. 1904년 2월8일 인천항에는 일본군함 치요다(千代田)호 등 각국 군함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일본은 '인천이 중립항이기 때문에 교전할 수 없다'는 각국 함장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러시아 군함이 9일까지 인천항을 떠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러시아 군함은 이를 묵살하고 팔미도 해상에서 40여분간 포격전을 벌였으나 일본 측의 집중 포화에 타격을 받고 소월미도 쪽으로 돌아와서 자폭을 감행했다. ▶인천 앞바다에서 러·일간의 해전은 간단히 끝났고 대한해협의 해전과 만주에서의 지상전을 통해 일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 일본은 한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고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역사의 한 장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자폭한 러시아 군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바랴크 군함의 깃발은 일본 측이 보관하고 있다가 인천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패전국 러시아 군함의 훼손된 깃발을 일본인들은 의기양양하게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러·일전쟁의 결과로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 광제호는 일제에 의해서 접수되고 말았다. ▶당시 함장이던 필자의 조부가 되시는 신순성(愼順晟)함장은 자신의 육신과도 같이 아끼고 사랑하던 광제호에 휘날리던 태극기를 조심스럽게 싸들고 와서 반세기 동안 깊은 곳에 안전하게 보관해 오셨다. 제물포 해전에서 패전한 러시아 군함의 깃발이 인천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을 때 나라 잃은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조부님에 의해서 깊은 땅속에 묻힌 채 반세기를 견뎌왔고 지금은 인천 개항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2년간 전국 순회전시를 위해 대여해간 바랴크호의 깃발을 10년간 연장·대여해 달라고 인천박물관에 요청해왔다고 한다. 러시아와의 외교관계와 경제협력 등을 고려해 2년간 임대를 결정한 송영길 시장의선의를 저버리고 영구대여를 통해서 계속 소유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바랴크호의 깃발은 각기 다른 비운을 겪은 광제호의 태극기와 함께 인천에 꼭 있어야 할 소중한 역사적 유물이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