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우경기본사 경제부장


 

   
 

매일 밤 9시만되면 서울로 가는 그날의 경의선 마지막 기차는 떠나고, 외부와 연결되는 버스도 끊긴다. 서울은 물론 외부도시와의 연결이 끊어져 육지속 섬이 된다. 그리고 남북한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대남방송과 암흑같은 적막함.
타 지역에서 그곳을 가려면 3~4개의 군검문소와 전쟁시 탱크를 저지하려고 설치한 낙석을 지나야 했다. 대낮에도 일반군용차와 전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외지인들은 신기한듯 구경하기도 했다. 가끔은 통일로를 차단하고 바리케이트를 쳐 오가는 차량통행을 막았다. 그곳은 전쟁터였다.
같은 시간 그곳에서 10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전혀 다른 세상이 공존했다. 늦은 밤에도 평상시처럼 행인들이 오가며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같은 곳이 같이 공존했다. 적어도 90년대 초까지 그곳은 그랬다. 그 섬속에 사는 주민들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져 타지역의 자유로움을 희생하며 40~50년을 지내왔다. 군인들이 목이 말라 물을 달라면 물을 주고, 김치를 부탁하면 김치도 주고, 훈련받는 군인들이 지나가면 길가에서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제대군인 환송회가 역에서 열리면 군악대의 흥겨운 연주에 맞춰 어린이들의 마음을 같이 들썩이기도 했다.
파주 문산에 사는 주민들. 이들은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이곳을 지키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온 이 땅의 주인이었다. 문산에서 10분정도 통일로를 쫓아 올라가면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속에서 찢겨지고 일그러진 철마를 볼 수 있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 눈에 훤히 떠오르게 하는 곳이었다. 세계 유일 분단의 현장을 볼 수 있는 이곳은 10여년전부터 남북한의 해빙분위기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임진각은 장단콩 축제와 일본과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현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남방송소리도 안들린다. 옛날의 각종 통제속에서 삼엄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분단이라는 문화콘텐츠가 자리 잡았다. 지금의 풍경은 옛날의 그 긴장감과 엄숙함을 볼 수가 없다. 심지어 남북을 물리적으로 갈라놓은 DMZ에 설치됐던 철조망의 녹슨 철책은 조그마한 상자에 담겨 상품이 됐다. 이에 따라 40~50년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희생하며 살았던 주민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몇년전부터 남한의 민간단체들과 정부는 이곳을 찾아 북쪽으로 남북한의 현실을 북한주민들에게 알리는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전단봉투가 달려 있는 커다란 풍선들이 북풍을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이 얼마전 "대북심리전을 계속할 경우 심리전 지역을 타격하겠다"고 했다. 과거 살벌했던 분위기를 경험했던 파주 문산지역 상인들과 일부 주민들은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대해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북전단 날리기 행사를 임진각에서 계속될 경우 물리적으로 저지하겠다고 했다. 파주시 문산읍 이장단협의회는 최근 문산읍사무소를 방문해 대북전단 날리기 행사가 더이상 임진각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시에 공식요청했다. 이 지역출신인 국회의원은 대북전단 살포지역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박찬호 이장단협의회장은 "북한이 임진각을 조준사격하겠다고 명시한 데다 지난해 11월 연평도포격도 발생한 상황이어서 주민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관광객이 많이 줄어 장사가 안되고 부동산거래도 없으며 가격하락까지 이어지는 등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줘 주민 입장을 시에 전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에 대북전단살포는 주민들에게 남한현실을 알려줌과 함께 김정일체제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고 이 곳을 떠나는 이들이 북한체제의 허구성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수십년간 이곳에서 각종 고통을 당했던 문산주민들의 고충도 이해하는 배려도 통일과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