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풍 거리 촬영, 강변길 걷기, 낙조 감상, 근대문화유산답사…. 이런 테마를 한 번의 나들이로 모두 즐기고 싶다면 충남 논산의 강경읍에서부터 전북 군산에 이르기까지 금강변을 따라가보자. 1박2일 여정을 잡는다면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나들이이다.

 

   
 



#1. 낡음의 향수
강경 빈티지여행



젓갈로 유명한 충남 논산시 강경읍. 읍사무소 인근 중앙초등학교 부근 골목길에서 시대를 거슬러 간 듯한, 낡은 흔적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빈티지여행이 시작된다. 양조장길, 아래장터길, 윗장터길, 양지뜸길, 우체국길, 홍교길 등등 골목의 이름에서부터 흘러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나같이 따스한 풍경들이다. 문구점, 분식점, 이발소, 사진관, 전자제품 대리점 등의 낡은 간판들은 여행자들의 가슴마저 뭉클하게 만든다.
강경포구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중기부터는 제주도에서 미역과 고구마 등을 선적한 배들이 서해를 거쳐 금강을 거슬러 올라 기항했고 중국의 무역선들도 비단이며 소금을 싣고 들어와 무역을 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로 들어와서는 수탈기지로 전락했다. 이런 역사가 흘러 중앙초등학교 강당,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남일당한약방,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구 강경노동조합, 북옥감리교회 등의 등록문화재가 남아있다. 골목을 누비는 빈티지여행에 이어 이들 문화재를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여행의 품격을 높여준다.
북옥감리교회 뒤편의 작은 언덕인 옥녀봉(일명 강경산)에 오르면 강경읍내, 금강과 강경포구 전체를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옥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하나 있다. 이 봉수대는 전북 익산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서 황화산성, 노성봉수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강경을 떠나기 전 필히 들를 곳은 젓갈상회들이다. 강경읍내에는 강경우체국 옆의 중앙상회를 비롯 1백50여 개의 젓갈판매점이 몰려 있다. 오젓, 육젓, 조개젓, 굴젓, 멍게젓, 창란젓, 낙지젓, 아가미젓, 갈치속젓, 오징어젓, 밴댕이젓, 황석어젓 등 30여 종류의 젓갈들은 한 가지라도 사지 않고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강경을 떠나기 전 놓치기 아까운 명소는 황산포구등대(높이 11.4m)이다. 강경둔치에 조성된 금강유원지 안의 강변에 우뚝 선 황산등대는 915년에 세워졌으며 하얀 빛깔이라 쉽게 눈에 들어온다. 금강 하류에서 서해의 어물을 싣고 들어오던 어선과 군산-강경-공주를 잇는 여객선, 맞은편 세도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오던 장사꾼들의 야간 운항을 도와주던 등대이다. 그 앞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어선과 여객선을 타고 다녔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들려올 듯하다.





#2. 환성적 낙조
익산 웅포관광지



이제 발길은 전북 익산시로 넘어간다. 웅포대교 입구도 지나면 웅포관광지가 기다린다. 덕양정을 지나 금강정에 오르자 크게 휘어지면서 도도하게 흐르는 비단강 물결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양정만 있던 시절에 비해 한층 높은 언덕 정상에 새로이 금강정을 지어놓아 여행객들에게 조망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주민들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웅포, 옛 이름으로 곰개나루에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배어 있다. 최무선장군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고려 말기, 우왕 6년(1380)에 왜선 5백여 척이 이곳을 통해 충남 내륙으로 진출하려 했다. 그때 화통과 화포로 무장한 최무선장군의 병선 80여척이 등장해서 왜구를 물리쳤다. 최무선 함대의 화포 공격으로 배를 죄다 잃은 왜구 잔병들은 충청도 옥천과 경상도 상주, 김천을 거쳐 남하하면서 퇴각하다가 전라도 남원에서 훗날 조선 태조로 등극하게 된 이성계에게 호되게 당한다. 그 전투가 바로 유명한 남원의 운봉 황산대첩이다.
현재 덕양정 자리에는 원래 용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4백여 년 전 창건된 용왕사는 1945년 태풍으로 무너져버렸다. 1982년 퇴락한 용왕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 2층 육각정 형태의 정자를 세웠다. 이때 덕양정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이후 2005년 목재와 기와로 다시 건립됐다.
본래의 덕양정은 활을 쏘던 사정의 이름이었다. 덕양정은 현재의 웅포초등학교 뒤편 구릉지에 위치, 웅포주민들이 활을 쏘던 곳이었다. 한겨울이면 덕양정 주변에서 보는 낙조가 아름답다. 하루를 마감하는 해는 호수같이 잔잔하면서도 폭이 넓은 금강을 붉게 물들인다. 바닷가도 아니고 높은 산도 아닌, 강변에서 감상하는 낙조의 정취가 그런 대로 신선하다.






#3. 소설 '탁류' 채만식과 만나다
군산 채만식문학관



익산에서 다시 금강을 따라 남서쪽 방면으로 가면 군산 땅이 반겨준다. 철새조망대, 금강하구둑을 지나서 만나는 곳은 채만식문학관이다. 이곳에서 여행객들은 소설가 채만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백릉이라는 호를 가진 채만식은 1902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에서 출생했다. 임피보통학교, 서울 중앙고보를 졸업했고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를 중퇴했으며 1924년 단편 '세길로'가 이광수에 의해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군산이 어떤 모습의 고장인지는 그의 소설 '탁류'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말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에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채만식은 소설 '탁류'를 통해 식민지 시대에 궁핍하게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같은 이미지의 흔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군산시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채만식문학관 1층 전시실 안쪽. 밀납인형으로 재현된 소설가는 양복 차림을 한 채 뒷문으로 바다가 보이고 3단 책장 하나가 놓인 작은 방 안에서 펜에 잉크를 찍어가며원고를 집필 중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소설가의 사진 여러 장이 전시돼있고 금강 하류와 금강하구둑이 한눈에 들어온다.
군산시 월명동에 가면 아직도 남은 일본집들을 보게 된다. 국가지정등록문화재 제83호인 구 히로쓰가옥이 대표적이다. 또 내항의 백년광장으로 가면 구 조선은행 사옥(도 지정 기념물 제87호)과 구 세관 건물 같은 일제시대 건물을 보게 된다.



<여행정보>
강경 중앙상회 041-745-6501, 익산 웅포면사무소 063-862-6906, 군산 채만식문학관 063-450-4467



/글·사진=유연태 본보 여행담당 객원편집위원 kotour21@naver.com

 

   
 
   
▲ 미국 와이오밍 주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자연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는 대자연을 카메라로, 아들은 망원경을 통해 가슴에 담고 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드워스는 전원과 시골을 배경으로 자연의 장엄함을 노래했다. 그의 시(詩) '무지개'(The Rainbow)에서 그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대자연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키는 세월이 흐를수록 메워져 갈 것이다. 아버지는 늙어가고 아이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동행의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면 이별의 순간은 언젠가는 다가온다. 함께 할 시간이 유한하다면 후회 없이 살자. 평생을 살며 아버지와 자식은 단 한번뿐인 인연이지 않은가. 아버지와 아이는 서로가 어버이인 것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미국)=여행사진작가 성명석 blue5z@naver.com www.pho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