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23일 천용택 국가정보원장을 전격 경질한 것은 국가정보기관의 장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데 대한 문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천 원장은 지난 15일 검찰 출입기자단을 국정원으로 초청, 안보설명회를 하는 자리에서 김대통령이 지난 97년 정치자금법 개정이전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으며, 국정원 직원들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을 미행했다고 발언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자 사의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천 원장의 발언 진의가 「김대통령이 대가성이 있거나 문제가 되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판단에 따라 사의를 반려해 상황을 마무리짓는 듯 했다.

 천 원장은 김대통령의 사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특히 국정원 직원들이 정의원을 미행했다는 발언에 대해 야당이 자신의 퇴진을 줄기차게 주장하자 22일에 있은 정례 업무보고에서 재차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천 원장이 어제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 김대통령이 만류했으나 사의를 강력히 표명해 수락한 것』이라고 전했다.

 형식적으로는 천 원장의 「사의 표명-대통령 수용」의 모양새를 갖추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청와대 안팎에서는 천 원장의 경솔한 언행에 대한 비판론과 함께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및 야당의원 미행이라는 미묘한 문제와 관련한 발언이 몰고온 정치적 파장때문에 인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구속에 이어 물의를 일으킨 천 원장을 교체함으로써 「원칙에 따른 정국 정면 돌파」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새 천년을 앞두고 여야간에 대립을 해소할 여야총재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이 인책 퇴진을 주장하는 천 원장을 경질, 여권이 추진하는 연내 총재회담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여권 내부에서는 정부의 고위직에 「입조심」을 시키는 의미도 이번 경질의 배경으로 해석하고 있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파업유도발언」으로 국정이 엄청난 난국에 빠진 데 이어 국가정보기관 책임자의 「어이 없는」 발언이 정부의 국가관리능력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회의쪽에서도 은밀하게 천 원장의 경질을 김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고위공직자의 신중한 언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야총재회담의 성사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박주선 전 비서관의 구속에 이어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인물중 하나인 천 원장까지 「상처」를 입고 도중하차함으로써 향후 정국운영의 중추를 담당할 수 있는 인물을 또 한사람 잃은데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