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제랍 패스 (해발 4,730m)에는 오후 3시15분에 도착했다. 이 부근에는 타지크족이 많이 살고 있으며 쿤제랍은 타지크어로 「와키」라고 하며 「피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산적들이 이 길을 넘던 캐러밴(隊商)과 구법승들을 습격하여 약탈과 살생을 자행하여 늘 피가 계곡을 흘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쿤제랍 패스에는 높이 2.5m 정도의 국경 경계비가 세워져 있는데 남쪽에는 Pakistan의 국장(國章)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PAKISTAN이라고 써있다. 그 반대쪽(북쪽)에는 중국의 국장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中國이라고 쓰여져 있다. 이 경계비가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뻔 했다. 주위는 눈 덮인 산으로 둘러 싸여져 있고 철조망도 쳐있지 않고 초소도, 경비병도 없는 조용한 국경이다. 국경 경계비를 끌어 안고 양발을 벌리니 왼쪽 발은 파키스탄 땅을, 오른쪽 발은 중국땅을 밟고 있다. 이 고도에서는 산소량이 평지의 약 2분의 1밖에 안되지만 체력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올라왔고, 보통 고소증상은 고소에 도달한후 약 3∼4시간 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아직 고소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뛰지 말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나는 킬리만자로산, 칼라파타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의 고소에 여러번 올라간 경험이 있지만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처음 고소를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쿤제랍 패스를 넘으니 右行, KEEP TO THE RIGHT SIDE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차는 좌측통행이었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우측통행이다. 우리들은 지금 파키스탄차를 타고 중국의 길을 달리고 있다. 파키스탄 운전기사는 헷갈릴 것만 같다. 칼라코룸 하이웨이도 이제는 「중빠꽁루」(中巴公路)로 바뀌었다. 쿤제랍 패스를 넘으니 주위의 경관은 일변했다. 길 양옆은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오른쪽 초원 한 가운데를 실낱같이 가느다란 쿤제랍강이 흐르기 시작하고 초원 너머로 높은 불모의 산이 병풍처럼 전개되고 있다.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일직선으로 뻗어 있어 차는 잘 달린다. 넓은 초원에서는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으니 마치 몽골의 초원같다. 그러나 집들은 겔(Gel)이 아닌 낮은 흙집들이다. 몽골처럼 초지를 따라 이동하지 않는 것 같다. 고개 하나 넘어 왔는데 경치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정말 놀랍다.

 오후 7시쯤(파키스탄 시간으로는 오후 4시, 시차 3시간) 피라리(해발 3,780m)에 도착했으나 그냥 지나갔다. 전에는 이곳에 중국의 출입국사무소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폐쇄되었다. 지금까지 차는 몇 대 보지 못했으며 마차도, 걷는 사람도 없는 텅 빈 곳이다. 고도를 낮추니 초원도 쿤제랍강도 점점 넓어져 간다.

 타슈쿠르간의 출입국사무소에는 오후 8시30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입국수속은 하지 않고 여권만 모두 회수하여 갔다. 우리가 타고 온 파키스탄 자동차는 이곳에서 파키스탄으로 되돌아 갔다. 이곳에서 10분거리에 있는 타슈쿠르간(해발 3,600m)의 파미르호텔에 도착하니 날벼락같은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과 내일 가야하는 카슈가르 사이의 길이 산사태와 강물의 범람으로 끊겼으며 앞으로 길이 복구되려면 2일 걸릴지 3일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곳은 인구 5천명의 타지크족의 작은 마을인데 이런 곳에 며칠씩 갇혀 있자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또한 앞으로의 여정도 어떻게 변경될 것인지 몹시 불안하다. 내일은 일요일이며 카슈가르의 Sunday Bazaar를 보기 위하여 여행일정을 이렇게 짰는데 모두 다 허사가 되었다. 이 바자르는 2천년 전부터 매 일요일에 장이 서는 중앙 아시아에서 제일 큰 바자르로 주변국에서도 오며 무려 10만명이나 모인다고 한다. 사고현장과의 통신도 안 되니 정확한 상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1999년 7월31일 (토)

 (타슈쿠르간 2일째)

 아침 기온은 17℃로 덥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위안이 된다. 밤 사이 길이 복구되었을리 없지만 모두 무슨 새로운 소식이 있나하고 모였다. 이곳에 발이 묶인 약 240명의 외국 관광객들도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 바쁘다.

 타슈쿠르간에서 카슈가르쪽으로 190㎞지점에서 산사태와 홍수로 여러개의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유실되었으며 현재 육군 공병대가 동원되어 주야로 복구작업에 힘쓰고 있으나 앞으로 4일은 걸릴거라는 비관적인 뉴스다. 지도를 보니 카슈가르까지는 280㎞인데 약 3분의 2거리의 지점이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파키스탄쪽의 도로는 그후 더 무너져서 우리들 다음 관광객들은 이곳으로 오지 못했다고 한다. 네덜란드팀은 가는데까지 가 본다고 아침 일찍 카슈가르로 떠났다. 오전에는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어제 맡겼던 여권으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오후는 각자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우리 일행의 대부분은 가벼운 고소증세를 호소하고 있었으나 4명은 심하여 고생하고 있었다. 심한 설사 환자도 아직 한 명이 고생하고 있다.

 타슈쿠르간(해발 3,600m)은 타지크어로 「돌의 성」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주위에 높고 아름다운 산에 둘러 싸인 습지대(濕地帶) 속에 있다. 변경의 마을이기에 인구는 약 5천명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독특한 얼굴의 타지크족, 위구르족, 키르기스족, 한족,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옛날에는 현장(玄캌)도 인도에서 돌아올 때 이곳에 들러 왕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1천3백년전의 이야기다. 거리의 중심은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2㎞정도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양쪽에는 높은 포플러가 자라고 있으며 버드나무도 많다.

 근처에 있는 석두성(石頭城)으로 가 보았다. 남북조 양대(南北朝 梁代)이전의 성이며 돌을 쌓은 기초위에 흙 덩어리로 윗부분을 축조한 타원형의 성이다. 성은 여러겹으로 되어 있으며 성내에는 주거지 등이 남아 있다. 약간 높은 곳에 있어, 타슈쿠르간의 거리 전체가 잘 보이며 이것을 둘러싼 카라코룸산맥, 힌두쿠시산맥, 파미르고원의 산들이 병풍처럼 우뚝우뚝 둘러져 있다. 동쪽 아래에는 타슈쿠르간 강이 흐르고 있으며 강변의 넓은 습지대(濕地帶)에서는 많은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있다.

 오후 4시에 호텔측의 호의로 타지크족의 음악과 무용공연(무료)이 있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희들의 춤에 한동안 우리의 갈 길이 끊어진 것도 잊을 수 있었다.

 큰 길 양쪽의 가게들의 간판은 위구르어, 한자와 영어의 세가지로 써 있으며 여자들은 타지크족 전통모자와 스카프를 쓰고 다니고 있다. 가게 앞에 여자들의 스타킹이 많이 걸려 있는 것이 이채로우며 우리나라의 40∼50년 전과 같이 구두에 철제 「징」을 박아주는 구두 수선가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두창이 닳지 말도록 쇠 「징」을 박았던 옛날 생각이 떠 올랐다.

 저녁에 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길의 새로운 곳이 또 무너질지 모르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