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정동준 계장의 설명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거기다 전쟁의 포화에 타 없어진 부지기수의 민족자산과 70여만 동의 건물 피해, 또 정든 고향과 혈육마저 북에 놓아둔 채 남으로 내려온 3백50여만 명의 월남 피난민과 300만 마리에 이르는 가축 피해까지 생각하면 6·25 전쟁은 그야말로 반만년 역사를 통해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간의 유혈전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런데 공화국에서는 왜 이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성전화하고 합리화하면서 2천여만 명의 공화국 인민들 전체를 제2의 민족해방전쟁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을까?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밀려오는 전쟁의 공포감에 질려 부르르 몸을 떨며 전율했다.

 현재 공화국에서는 제2의 민족해방전쟁을 위해서 하루라도 전쟁준비를 하지 않는 날이 없는데 만약 이 조선반도에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어케 될까? 앞으로 또다시 그와 같은 전쟁이 재발한다면 이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암담한 생각이 머리를 무겁게 했다.

 기케 되면 오마니 아바지도 다시 만나볼 수 없게 되는데….

 인구는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6·25와 같은 전쟁이 조선반도에서 또다시 일어난다면 그때는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와 잠시 넋을 잃고 서 있다 정동준 계장 곁으로 다가갔다.

 『북한에서도 일반 사민들이 6·25 전쟁 당시 가족이나 혈육을 잃고 지금까지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네.』

 『여기 도판에 적힌 일반 사민들의 피해는 전쟁 중 남쪽에서 입은 피해만 집계해 놓은 수치라는 것을 명심해야 돼. 북쪽은 아직까지 그 피해규모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전쟁 당시 일반 사민들이 입은 피해는 우리가 아까 어림짐작으로 집계해 본 5백만 명 속에도 빠져 있어. 그러니까 6·25 전쟁의 참화와 그 후유증이 어느 정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인구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를 데리고 사진전시관을 나오며 다시 물었다.

 『전쟁의 참화와 그 후유증이 이렇게 무서운데도 또 다시 민족을 해방한다느니, 조국을 통일한다느니 하면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겠어…네 생각을 솔직하게 한번 말해 봐?』

 『다시는 민족해방전쟁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네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어떻게 하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해야 통일 할 수 있다고 선동하고 있지?』

 『네.』

 『인구 너도 북한에 있을 때는 명령만 내리면 남반부로 달려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목숨 다 바치겠다고 맹세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