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정동준 계장이 올라타자 방배동 사거리로 가자고 말했다. 택시 운전기사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출발시켰다.

 『됐어.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정동준 계장은 만족한 듯 인구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운전기사는 신반포아파트단지를 빠져 나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좌회전했다. 그때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며 달리던 차들이 멈춰 섰다. 인구는 물끄러미 창 밖을 내다보다 어마어마하게 길고 커 보이는 고속버스들이 터미널 광장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서 있는 모습이 진기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야아! 저기는 뭐 하는 곳인데 저렇게 큰 버스들이 높은 건물 속에서 자꾸 내려올까?

 인구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터미널 입구에 서 있는 아취형 입간판을 쳐다보았다. 「고속버스터미널」이라는 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마어마하게 길고 큰 버스들이 줄을 맞춰 넓은 마당을 다 메우고 있고, 또 마당 뒤편에 서 있는 고층빌딩 속에서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내려오는 모습이 공화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스들이 치익치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터미널 앞마당으로 내려와 큰 도로로 나오는 모습도 유심히 지켜보았다.

 먼저 나온 버스 앞 유리창에는 「서울·부산」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고, 뒤에 내려온 버스에는 「서울·대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창문이 꼭꼭 닫힌 버스 안에는 의자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창문보(커튼)도 달려 있었다. 유리창 앞에 표지판이 붙어 있고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을 봐서는 잘 사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남조선 정부가 급하게 끌어다 놓은 버스들 같지는 않았다. 분명 서울에서 부산이나 대구로 가는 버스 같아 보이는데, 저렇게 고운 색깔을 칠해 놓은 큰 버스를 타고 부산이나 대구를 향해 수도 없이 서울을 떠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그렇지만 정동준 계장에게 그걸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한참 더 남조선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날이 다가오겠지 하며 정동준 계장을 바라보았다.

 『북한에 있을 때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해 본 일 있나?』

 『없습네다.』

 『그럼 지난 1977년도에 개통한 평양·순안간 고속버스나 1978년도에 개통한 평양·원산간 고속버스를 본 일은 있나?』

 『없습네다.』

 『화물자동차 몰고 평양을 몇 번 갔다왔다면서 여태 공화국 고속버스도 못 봤어?』

 인구는 고속버스란 말소리는 몇 번 들은 것 같은데 실제 고속버스를 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이곳 남조선에는 일반 시민들이 요금을 내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세 종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