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식 기업지배구조로 전세계 기업구조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영미식 기업지배구조가 모범사례나 새로운 대안은 아니라는 주장이 미국 경제학자에 의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의 마우로 구일렌 부교수(경영학)는 22일 「기업지배구조와 세계화:수렴가설에 대한 이론적·실증적 반론」이란 논문에서 각국의 기업지배구조의 사례를 비교분석한 결과, 어떤 경우에서도 기업지배구조가 하나로 수렴화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경제가 불황에 빠지기 전인 70년대 초반만 해도 미국형 기업지배가 전세계의 모범사례로 받아들여졌으나 80년대 들어 일본과 독일의 경제력이 급부상하자 이에 대한 회의가 제기됐고 이해관계자들간의 협조에 근거한 일본과 독일의 모델이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것.

 또 90년대 들어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미국경제의 부활을 계기로 다시 미국형 지배구조의 우수성이 강조되며 사정이 바뀌고 있다면서 이는 특정모델이 최선의 기업지배구조라고 단정하는 것이 위험사고임을 보여준다고 구일렌 교수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구일렌 교수는 또 기업지배구조가 특정한 형태로 수렴할 수 없다는 이론적 근거로 각국의 법률적 차이와 제도, 정치상황 등의 차이를 들었다.

 구일렌 교수는 이런 경영환경의 차이로 인해 세계각국은 각기 다른 기업지배구조를 발전시켜왔다면서 미국은 개인주의 기업가정신, 고객만족을 중시하는 문화적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식과 기술집약적인 소트프웨어, 금융, 생명공학 등에서 우위를 보여왔다고 해석했다.

 반면 한국은 자본집약적 산업에서 재벌이라고 불리는 거대그룹을 형성시킨 기업구조와 사회조직의 영향으로 자동차, 화학, 가전, 철강과 같은 대량생산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구일렌 교수는 설명했다. 대만은 또 소규모 가족기업들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 특유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기계기구, 전자·자동차 부품 등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

 구일렌 교수는 기업구조의 수렴화 주장에 반대하는 실증적 근거로 영미식 법률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해외투자액이 지난 80년 세계해외투자액의 66%에서 97년 50%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의 법률전통을 가진 국가들은 같은 시기에 34%에서 49%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상장기업의 주주구성 변화율 추이에서도 앵글로 색슨형 국가에서는 개인주주의 소유비중이 매우 높지만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식 법률전통을 따르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개인주주의 비중이 작고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들어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비금융부분 기업의 부채비율도 국가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었다.

 구일렌 교수는 세계화가 기업지배구조를 단일한 모범사례로 수렴시키기보다 기업간 차별화를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성장에 적합한 각국 고유의 지배구조가 최선의 지배구조로 발전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