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그들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같은 동족을 그렇게 악선전해서 무엇을 덕보자는 속셈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정치군관들의 꿍꿍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태껏 믿고 있었던 내면세계의 질서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니까 가슴에 남는 것은 지울 수 없는 배신감 뿐이었다. 만약 공화국에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형제가 살고 있지 않다면 대번에 가슴이 시원해질 때까지 욕지거리라도 내뱉으며 모두 들고일어나 수령 동지와 지도자 동지를 욕보이는 정치군관들부터 때려죽이라고 선동하고 싶은 울분이 끓어올랐다.

 대관절 왜 그렇게 같은 동족을 헐뜯고 사실과는 다른 새빨간 거짓말까지 해대면서 공화국 인민들 모두를 바보 천치로 만들까?

 인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사실을 공화국의 인민들이나 인민군대의 하전사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대다수 공화국 인민들과 인민군대의 하전사들은 자신처럼 일순간에 눈이 돌아 악선전을 해댄 정치군관들과 그들을 옹호한 보위원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인민들을 속이고 배신한 자들부터 처단하자고 총구까지 겨누면서 말이다.

 자신이 남조선에 와서 두 눈으로 확인한 것들 중 또 하나 의심스러운 것은 평양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는 분들보다 더 많은 애국지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쳤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공화국에서는 왜 이 많은 애국지사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이름을 한번도 밝히지 않고 어버이 수령과 그 외 열사들 이름만 계속 반복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다음 세 번째로 자신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점은 평양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는 두 할아버지의 이름이나 다른 혁명열사들의 이름이 이곳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왜 찾아볼 수 없는가 하는 점이었다. 분명히 할아버지는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만주에서 어버이 수령님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는데 왜 이곳 남조선 국립묘지 충열대에는 비석이 서 있지 않는가 말이다. 만약 평양 혁명열사릉에 비석이 서 있어서 이곳에는 세우지 않았다면 공화국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는 분들은 이름만이라도 어느 쪽에 적어놓아야 후세의 사람들이 그 업적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런 내용의 안내문 한마디 적혀 있지 않으니까 자신이 무언가에 홀려들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조선 국립묘지의 기록도 공화국 정치군관들의 악선전처럼 의심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를 진실로 받아들여 믿어야 좋을지 점점 겁도 났다.

 그렇지만 그런 의구심과 답답함을 정동준 계장에게 바로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남산에서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화까지 낸 그에게 또다시 혼이 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