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간부터 여기 앉은 정동준 계장이 보육원 동무도 되고 오마니 역할도 하면서 서울 시내 구경시켜 줄 거야. 같이 다니면서 궁금한 것 있으면 묻고 갖고 싶은 물건 있으면 마음껏 사 달라라는 말씀을 했습네다.』

 인구는 눈물을 닦으면서 과장이 한 말을 어린아이처럼 되풀이했다. 정동준 계장은 피우고 있던 담뱃불을 비벼 끄며 꾸짖었다.

 『그런데 왜 내가 하는 말은 믿지 않고 계속 공화국 정치군관들 이야기만 되새기고 있는 거냐?』

 『한번만 용서해 주시라요. 앞으로는 절대로 기런 생각을 하지 않갔습네다.』

 『약속할 수 있겠어?』

 인구는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시선으로 정동준 계장을 바라보았다. 정동준 계장은 휴지를 빼내 인구에게 건네주며 눈물부터 닦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창 밖으로 보이는 서울 시내 정경을 상세히 설명해 준 뒤 택시를 잡아타고 국립묘지로 달려갔다. 인구는 그때서야 중앙정보부로 끌려간다는 공포감에서 벗어나며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택시는 어느덧 남영동과 용산 역전을 지나 제1한강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동준 계장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이 좋아 차창을 더 내리며 인구를 불렀다. 빼곡하게 들어선 반포지구의 아파트단지를 눈여겨보고 있던 인구가 고개를 돌렸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들이 곽인구가 서울 시내 나들이 나온다고 금방 세운 아파트들 같으냐, 그렇찮으면 오래 전부터 서 있던 아파트들 같으냐?』

 『오래 전부터 서 있던 아파트들 같습네다.』

 『아까 남산 타워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 소감은 어땠어?』

 『너무 넓고 고층건물들도 많이 서 있어 남조선이 가난하고 거지만 득시글거린다던 정치군관들의 사상교양내용이 전탕 거짓말 같다고 생각했습네다. 기러구 여태 속고 살았다는 것을 생각하니까니 분하고 배신감이 끓어올라 억이 막히기도 합네다.』

 『그래에? 그러면 말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 우리가 지금 택시를 타고 지나가고 있는 이 다리는 제1한강교란 철다리야. 제일 먼저 놓았다고 해서 서울 시민들은 제1한강교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아까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이 한강을 기준해서 강의 북쪽은 강북지역이라 부르고 남쪽은 강남지역이라고 불러. 그런데 좀더 좁혀서 4등분해서 부르고 싶으면 강남과 강북에다 강서지역과 강동지역으로 나눠서 부를 때도 있어. 이제 강북지역이니 강남지역이니 하면 대충 어디쯤 된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겠어?』

 인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동준 계장은 반포지구에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단지가 월남 귀순한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지어놓은 아파트단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북쪽에서 살면서 평양에 몇 번 가보았느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