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 인화여중 핸드볼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부모 가슴에 묻고또래보다 작은 체구지만 운동 실력은 월등인천대표 소년체전 출전만 올해로 세번째

경기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지만 아직도 머릿속이 멍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지난달 31일 제3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여자 중등부 핸드볼 예선전이 열렸던 광주 염주종합체육관.

경기종료 휘슬이 울린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김)상미(14·인화여중)는 코트를 떠날줄 몰랐다. 첫 상대가 경기도 대표인 의정부여중.

이 정도 쯤이면 쉽게 1회전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경기가 좀처럼 풀리지 않더니 끝내 14:19로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인천 송현초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초등부 전국대회에서 두 차례나 준우승한 경험이 있어 이젠 어느 정도 패배에도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 상미의 얼굴에 가득배인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인천대표로 출전했지만 이제 겨우 여중 1년생으로 팀의 막내. 그런 상미가 이처럼 패배에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남다른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해맑은 상미의 수줍은 미소에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와 10년째 연락이 두절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수업이 끝난 뒤 교문 앞을 메우던 학부모들의 모습은 상미에겐 늘 '그림 속 풍경'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것이 핸드볼이다.

운동을 하다보니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함께 교문을 함께 나설 일이 잦아지고 그러다보니 그리움도 잦아 들 수 있었기 때문.

지금 상미가 살고 있는 안식처는 '보라매 보육원'이다. 큰아버지의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지금도 명절날 유일하게 찾아주는 가족이다.

혈육이지라 큰 아버지 역시 무거운 결정이었으나 상미와 함께하기엔 무거운 결정보다 삶이 더 버거웠을 터.
그러나 상미는 보육원에 잘 적응해 갔다. 적응보다는 오히려 보라매 식구들에겐 자랑거리고 영웅이다.

인천을 대표해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출전한 횟수만도 벌써 세 번째다. 핸드볼이 상미에게 가져다 준 두 번째 배려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남모를 후원으로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여전히 상미를 보는 이들은 걱정이 앞선다.

운동 실력은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월등하지만 유난히 작은 체구에 안타까움이 적지 않다. 평범한 가정 같으면 운동하는 자녀들에게 보약에다 갖가지 음식을 해 먹인다치지만 상미는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이 전부다.

그래도 상미는 "많이 먹는데 키가 안커요, 이젠 중학생이 됐으니 좀 크겠죠"라며 수줍은 미소로 담담히 넘긴다.

"꿈이요. 국가대표요. 우생순(영화.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 나오는 우선희 언니처럼 언제가는 저도 올림픽의 주인공이 될때가 있겠지요. 한 10년 쯤 후에…"

/글·사진=김지환기자 blog.itimes.co.kr/art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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