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잘 알겠습네다』 하며 다시 정동준 계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말이야, 앞에 앉은 운전기사가 나이가 많아 보이면 "기사아저씨"라고 부르면 깍듯이 존경하는 호칭이 되어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 무엇이든지 친절하게 잘 도와 줘. 나중 혼자서 시내 돌아다니다 택시 탈 일 있으면 꼭 그렇게 해. 알았지?』

 인구는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지신호에 묶여 있던 차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정동준 계장은 동작동 국립묘지가 가까워오자 주머니에 든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운전기사한테 건네면서 국립묘지 정문 앞에서 세워 달라고 했다.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입니까?』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고 잔돈을 거슬러주며 물었다. 정동준 계장은 그렇다며 운전기사에게 인구를 소개시켰다. 운전기사는 기자회견도 하지 않은 귀순자를 이렇게 만나기는 처음이다 하면서 차에서 내려서 정중하게 정동준 계장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인구 앞으로 다가가,

 『나, 지난 1952년 6·25 때 평북 구성에서 단신 월남한 오경택이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악수나 한번 합시다』하며 손을 내밀었다.

 『곽인굽네다.』

 인구가 운전기사와 손을 맞잡고 자기 이름을 밝혔다. 정동준 계장은 과장이 가르쳐준대로 인사를 잘하는 모습을 보고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운전기사는 인구의 손을 놓기 싫은 듯 계속 흔들면서 고향을 물었다. 인구는 운전기사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평북도 낙원군입네다』 하고 낮게 대답했다. 운전기사는 평안북도 낙원군이라는 인구의 대답에 언성을 높이며 되물었다.

 『뭐라구요? 함경남도 함흥시 옆에 있는 낙원군 말고, 평안북도에 있는 낙원군 말이오? 아, 그 지도책 보면 구성시와 의주군·삭주군·대관군·천마군 사이에 고구마처럼 길죽하게 꼭 끼어 있는 군 하나 있잖소?』

 인구는 그렇다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기사는 갑자기 흥분하는 빛을 보이며 인구의 어깨를 덥석 껴안았다. 얼떨결에 고향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꿈만 같다는 표정이었다.

 『하, 이거, 참! 10년 넘게 택시 몰면서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네. 보자 하니 두 분이 무척 바쁜 사람들 같아 염치없이 노상에서 더 붙잡을 수는 없고 죄송하지만 후일 내한테 전화 한번 해 주실 수 없겠소? 우리 집에 가서 고향 소식 좀 들으며 밥이나 한 끼 대접하고 싶소. 약속할 수 있겠소, 곽인구씨?』

 운전기사가 다짐을 받듯이 물었다. 인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정동준 계장의 눈치만 살피며 난감해 했다. 정동준 계장은 약속할 수 있다고 대신 대답했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에게 명함을 받아 잘 챙기라고 한 뒤 운전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