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독립운동가. 하지만 50년대 후반 간첩죄로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죽산 조봉암 선생의 복권을 위한 명예회복 운동이 그의 고향인 강화에서 일고 있다.

 2일 강화 문예회관 대강당에서는 조봉암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고 잘못 알려진 역사적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죽산 조봉암선생 탄신 100주년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조봉암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고향인 강화에서 군내 뜻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죽산 조봉암선생 추모사업회 주비위원회(위원장·유진국)의 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강연회에는 조봉암선생 명예회복 서명운동에 이어 이영석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수종 충북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문한동 정치학 박사 등이 각각 「죽산은 간첩이 아니다」 「농지개혁은 죽산덕이다」 「죽산의 정치역량」이란 주제로 강의가 펼쳐졌다.

 1899년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550에서 출생, 강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죽산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을 비롯, 파란많은 역경을 거쳐 제2,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특히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2백16만표를 획득, 2위로 낙선할 정도로 이승만에 맞설 거물정치인으로 부상했던 인물.

 이날 강연회 및 명예회복 서명운동은 최근 당시 외압에 의한 무리한 재판과정과 꿰맞추기식 수사에 따른 부당성 등에 대한 사회단체와 언론매체의 잇따른 반론제시 등 죽산의 복권운동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고향인 강화에서 주민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그는 북진통일이 지상과제로 받들어지던 시대에 평화통일을 설파하다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보당의 강령과 정책이 북한의 노선과 같고 북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대가로 국내기밀을 제공했다는 간첩혐의로 기소돼 59년 7월31일 사형에 처해졌다.

〈왕수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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