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겁결에 달려오다 전쟁준비배낭 속에 꼭 넣어 올 비상식량이나 응급처치 약품 등을 빠뜨리고 온 아낙들은 다시 집에까지 가서 가지고 오느냐, 마느냐 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때 가상 표적물이 신호탄을 매단 채 공중에서 펼쳐졌다.

 따다다다다 따앙 따아앙….

 방호벽 뒤에서 거어총 자세로 하늘을 지켜보고 있던 노농적위대원들이 표적물을 향해 집중 사격을 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미그기편대도 지하 갱도로 몰려드는 주민들을 향해 공포탄을 갈겨댔다. 소리만 요란한 공포탄이지만 갱도로 대피하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따다다다 하고 총성이 들려올 때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가 총성이 멎으면 줄행랑을 치듯 지하 갱도 쪽을 향해 내달렸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어린것들은 공포감에 질린 얼굴로 자지러지다 신발짝도 잃어버린 채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때도 꼭 이랬었지….

 손씨는 며느리와 손녀의 손을 잡고 지하갱도 쪽으로 달려가며 35년 전을 더듬고 있었다. 미군 쌕쌔기들이 폭탄을 퍼붓던 그날 밤 그녀는 아버지 없는 어린 6남매를 부둥켜안고 시댁으로 달려갔다. 맏이 곽병룡 상좌 손에 둘째 병순이와 셋째 병숙이를 맡기고, 넷째 병호와 다섯째 병기, 그리고 여섯째 병수는 그녀가 손잡은 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시숙이 살고 있는 큰댁으로 달려가는데 막내가 손에서 빠져나가며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폭탄 파편 한 조각이 막내의 머리를 친 것이었다.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땅바닥에 나자빠져 피를 쏟고 있는 자식을 보니까 자꾸 우습기만 했다. 죽고 사는 것이 꼭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필이면 아비 얼굴도 못 보고 태어난 막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내 품에서 뺏어가나 싶어 자신도 모르게 저주가 끓어올랐다.

 이놈들! 서방 없이 키운 그 자식이 그렇게 탐 나더냐? 왜 남의 나라에 쳐들어와 생떼 같은 내 자식 앗아가네? 내가 평생을 두고 네놈들을 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피범벅이 된 자식을 묻어주지도 못한 채 시댁 식구들을 찾아가던 그날 밤도 꼭 오늘밤 같았다. 쌕쌔기 비행기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사방천지를 진동시켰고, 길바닥에 죽어 나자빠진 시신 옆에는 통곡을 하며 피난 갈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아녀자들이 즐비했다.

 세월이 흐르면 산천도 변하고 가슴에 사무친 원한도 풀린다지만 그 아비규환의 세월을 어찌 잊을 것인가. 묻어주지도 못하고 내버린 그 자식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살아남아야 하고, 복수하기 위해서는 지하 갱도로 들어가 쏟아지는 폭탄을 피하며 젊은이들이 싸울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어야 미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반부를 해방해 조국을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손씨는 그날을 위해 이를 깨물고 갱도 입구까지 걸어갔다.

 『부장 동지 로친네가 아닙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