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仁久의 고향(267)

남쪽으로 가는 길(32)

 대대나 중대 정치부 군관들은 늘 남조선 국방군들은 제대로 먹지를

못해서 대다수의 병사들이 허약한 체격에다 파리한 얼굴빛을 띠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첫인상이 허수아비 군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두 눈으로 확인한 국방군 초병의 모습은 정치군관들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키는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쯤 더 커

보일 만큼 장대했고, 얼굴색도 불그스레한 구리 빛을 띠면서 무척 밝고

건강해 보였다.

 인구는 국방군 초병의 모습을 슬쩍슬쩍 훔쳐보면서 자신이 공화국

정치군관들한테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싶어

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얼굴 색이 파리해 보인다거나 흉악해 보이는 모습은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쳐죽일 새끼들!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정치사상교육 시간마다 떠들어대든 군관들을

욕하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버렸다. 그래도

국방군 초병은 눈 한번 부라리지 않은 채 다가와 물었다.

 『정말 귀순한 겁니까?』

 『네. 정말 귀순한 겁네다. 믿어 주시라요.』

 인구는 애원하듯 말했다. 국방군 초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럼 주머니에 든 것을 모두 내놓고 여기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시오.』

 국방군 초병이 시키는 대로 윗도리 주머니에 든 군인수첩과 오다가

주운 삐라도 꺼내놓았다. 국방군 초병은 말없이 인구의 거동을 지켜보다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인구는 그때 전화를 걸고 있는 국방군 초병이 장길우 하사라는 것을

알았다. 장길우 하사는 공화국측의 정치군관들보다 더 좋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그의 손목시계는 오전 9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젯밤

11시경 대대군의소를 빠져 나왔으니까 장장 열 시간 이상을 죽음의

공포감과 싸우며 물에 잠긴 비무장지대를 헤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니 지뢰를 밟지 않고 국방군 초소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꿈만

같았다. 그 소용돌이치는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지 않고 사미천과

임진강으로 모여드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하천들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례지만 군인이오?』

 급히 전화를 걸고 있던 장길우 하사가 물었다. 인구는 힘주어 대답했다.

 『네, 군인입네다.』

 『그럼 소속 부대는?』

 『인민군 3사단 직속 운수중대 1분대에 소속되어 있었습네다.』

 『직책은?』

 『후방부 화물자동차 운전사관이었습네다.』

 『물에 잠긴 그 많은 하천들을 어떻게 다 건너왔소?』

 『헤엄을 쳐 건너왔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