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仁久의 고향(270)

남쪽으로 가는 길(35)

 소대장은 빙 둘러 서 있는 병사들에게 아무 말도 시키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혼자 누워 있게 하라고 말한 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빨리 앰뷸런스를 보내 달라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인구 주변에 우우 둘러섰던 병사들은 금방 물에서 건져 올려놓은 익수자(溺水者)를 바라보듯 한 걸음 물러나 안타까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한 5분이나 지났을까? 말없이 울면서 누워있던 인구가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시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전화를 걸고 돌아서던 소대장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인구는 바싹 마른 입술을 두어번 혀끝으로 침을 찍어 바른 뒤

 『죄송합네다만 물 한 그릇만 얻어 마실 수 있갔습네까?』

 하고는 더뎅이가 앉아 있는 입술을 또 적셔댔다.

 『아, 이제 정신이 좀 듭니까? 조금만 기다리시오.』

 소대장은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들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인구를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입니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드시고 조금만 더 쉬십시오. 곧 앰뷸런스가 올 겁니다.』

 인구는 앰뷸런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를 위해 국방군 민정경찰들이 무언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답례하며 한 병사가 들고 온 보리차 컵을 받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은가? 보리차 컵을 받아 더뎅이가 앉은 마른 입술을 적시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물빛이 이상했다. 인구는 그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물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왜 그래요? 물에 무엇이 있습니까?』

 소대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인구는 뭐라고 말은 못한 채 혼자 난처한 표정만 지었다.

 물 색깔이 와 이러케 거무죽죽하고 이상한 냄새가 날까? 혹 이 물 속에 나를 죽이기 위한 독약을 타놓은 것은 아닐까? 정치군관들은 사상교양시간마다 남조선 국방군 아새끼들은 사람이 먹는 물 속에도 독약을 풀어놓을 만큼 음흉한 놈들이니까 절대로 믿지 말라고 했는데….

 『보리차가 싫습니까? 다른 물을 갖다 드릴까요?』

 당황한 소대장이 인구 앞에 놓인 보리차 컵을 지켜보다 조금 마셔 보았다. 조금도 변질된 느낌은 없었다. 끓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구수한 보리냄새가 풍겨와 마시기 좋았다. 그런데도 인구는 마시기를 꺼려했다. 소대장은 보다못해 이일병을 불렀다.

 『냉장고 속에 있는 약수를 가지고 와 봐.』

 이일병이 산에서 떠온 약수를 한 잔 들고 왔다. 소대장은 보리차가 입에 맞지 않으면 약수를 마시라고 했다. 그래도 인구는 물을 마시지 않은 채 소대장의 거동만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