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넝쿨장미 - 5
  우리는 몇 개월 전에 우연히 공항에서 부딪쳤다는 이유로. 그리고 또 다시 한 경찰서 대공과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로 무척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출타했던 대공과장이 입서할 때까지 구내식당에서 무료한 시간을 때웠다. 서로에 대한 호감과 친밀감을 한껏 표시하며. 더구나 금방 입서한다던 대공과장은 서너 시간이나 늦게 사무실로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웃고 떠들던 나머지 약간 지쳐 있기까지 했다. 아무튼 우리는 석회 시간이 다 되어서야 대공과장실로 올라갔다. “대공부서는 안이하게 근무하는 데가 아닙니다.”
대공과장은 발령신고를 받으면서 이렇게 언성을 높였다.
“현 정권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가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
과장은 공안부서만 전전한 사람답게 대공과를 침이 마르도록 추켜세웠다. 우리는 과장 집무실에서 커피를 대접받으며, 그의 일장연설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안정국이나 좌경이야기를. 우리가 따분해 하는 눈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장은 계속해서 연설을 늘어놓았다. 즉 그는 여경을 받은 이유로부터 시작해서, 대공과의 당면한 과제, 좌경의식화 활동이 급진적이고 과격해졌다는 것, 대공요원들이 5공시절보다 사명감이 줄어들었다는 것, 그래서 재야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 잘못하다가는 정권이 재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 강조했다. 우리는 그의 열띤 설명을 근 한 시간가량 듣고서야 과장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니, 과장은 우리의 진을 다 빼놓은 뒤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결재서류를 집어들었다. 역시 과장은 소문대로 대공통 중에서도 골수 대공통인 것이 분명했다.
“대단한 분인 것 같네요.”
차지연이 과장실을 나오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느낀 인상답게 과장은 걸물 중에서도 걸물임이 분명했다. 그것도 자신의 안일보다는 국가적 사명감이나 공명심을 더 중요시하는. 직원들에 의하면 그는 본래 영관급 장교였는데, 5공시절 군 간부 우대정책으로 특채되어 들어왔으며, 본청 대공과를 시작으로 지청 공안분실과 각서 대공과를 오가며 근무한 전형적인 군대식 대공통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고문과 회유에 도통해서, 그의 손에 들어간 피의자는 단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자백한다는 거였다. 그러한 그가 신설된 3급 경찰서로 좌천된 것은, 용의자를 고문을 하다가 잘못돼서 문책성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특기가 공안이므로, 머지않아 본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우리는 과장 신고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3계장을 알현했다.
“소신을 갖고 일해 보세요.”
3계장은 발령인사를 받은 후, 나와 차지연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씨익 웃었다. 나와 차지연은 3계장의 환대에 조금은 당황했다. 우리는 3계장이 기골이 장대하고, 수사 능력이 뛰어난 공안 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3계장은 직원 장악 능력이 남다르며, 주어진 업무는 잔혹할 정도로 챙기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니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좌경공작을 해야 하는 공안형사였다. 계장이 아무리 무섭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라 해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다져먹었다. 나한테 어떤 일이나 업무가 주어져도 반드시 해내고 말리라고. 차지연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다급해진 건 차지연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계급만 경사였지, 시험으로 고속 승진한 물 경사였다. 더구나 나는 파출소 이후 줄곧 섬과 기동대, 출장소, 형기대 같은 특수부서로만 돌아서, 본서 실정과 업무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니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지연은 대공과는 물론이고 청와대 근무까지 해본 경험이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와 차지연은 계장을 따라 3계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