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대감 이원익은 청백리로 유명한 분이다. 조선조 500년간의 으뜸가는 명신-역대 임금들 밑에서 여러차례 재상을 지내면서도 청렴결백했다. 그런만큼 그에 따른 일화가 많다.

 대감이 궁하게 사는 것을 딱하게 여긴 임금이 금침과 비단옷을 하사했다. 그러나 당치않은 일이라며 굳이 사양했다. 임금이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무명옷을 내렸다. 모두 말하기를 검소한 생활에 맞는 옷이라고 했다.

 그 이전의 일이었다. 이제나 그제나 그에게는 집 한칸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한채 지으려고 재목을 준비중이었는데 호조판서의 임명을 받고는 집짓는 일을 단념했다. 판서로서 집을 짓는다면 국고를 축냈다는 의심을 받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세상의 의심을 받는 것은 무서울게 없지만 원래 관리란 의심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의 만년에 나라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듯 예전의 관리들은 청렴을 신조로 하여 생활했다. 오리대감 말고도 청백리가 많았다. 그들은 오로지 나라에서 주는 녹으로만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족을 알았다. 부인이 까닭없는 새옷을 장만하는 것도 꺼리고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선물을 얻어오는 것도 마다고 했다. 관가의 말을 개인적으로 타는 것을 사양했고 저녁에 밥지을 쌀이 없어 이웃에서 빌어오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리들-극히 일부가 물을 흐려 놓았겠지만 옛과 반대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드러난다. 고관 부인의 고급옷이 문제되고 하급관리의 수뢰 비리도 있다. 최근 수련원의 화재사건으로 군청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부패도 드러났다.

 마침 국제투명성협회라는 국제기구의 국가청렴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85개국중 43번째로 나타났다. 아시아의 12개국중에서는 6위-아무리 경제성장이 어떠니 하지만 청렴으로든 부패순위로든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직자 준수사항』이라는 것까지 등장했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식과 자세가 중요하다. 오리대감과 같은 옛 선비정신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