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죽음이다. 은곤의 얼굴이 하얘졌다.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틀림없이 이런 굉음일 거야. 아, 이 사람아 뭘 그리 놀라나. 하얗게 질린 은곤의 안색은 아랑곳없이, 작업반장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뭍혀, 반장의 입모양이 금붕어가 뻐금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티라노사우르스가 아주 조금씩 배설을 하듯이, 탭핑기(나사 깎는 기계)에선 쇠톱밥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공장 안 가득한 기름냄새가 은곤의 콧속을 점령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나, 다시 돌아갈래!’
 6년 전, 김은곤씨(27)가 ‘삼진정공’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회사는 사회 초년병을 그렇게 ‘반겨’줬다. 당시 그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들다’는, 이른바 3D업종을 선택한 것은 사실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평생직장이 될 줄이야. 아,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병역 의무를 마친 뒤에도 은곤은 회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3D에선 뭐랄까…, ‘진한 인간의 땀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의 신성함, 노동의 가치, 뭐 그렇게 표현하던가.
 “처음 몇 달만 힘들었어요. 지금은 공장이 얼마나 편한 지 모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보람을 느낀다”며 “생각처럼 힘들기만 하다면, 함께 일하는 선배들이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겠느냐”며 웃음 짓는다.
 공장안이 좀 시끄럽고 기름냄새가 나긴 한다. 하지만 귀마개와 마스크로 간단히 해결된다. 작업장은 특히, 1년에 두 차례 정기검사를 통해 기준치를 넘지 않을 만큼 일하기에 적정한 환경을 유지한다.
 ‘내가 만드는 너트가 없으면 누구도 차를 타고 다닐 수도, 건물을 지을 수도 없어.’ 은곤이 만드는 너트는 2만 여종. 이 제품들은 국내 자동차 회사는 물론, 해외건설현장 곳곳에 공급된다. ‘아름다운 세상 건설을 위해 벽돌 한 장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은곤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은 여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굵은 땀방울을 씻어내고 동료들과 어울려 들이켜는 한 잔의 생맥주, 스트레스를 격파하는 볼링,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낚시, 새것을 만나는 기쁨인 쇼핑 등은 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아이콘이다.
 “자기 인생, 자기가 개척하는 것이지만, 대책 없이 편한 것만 찾는 또래들을 보면 솔직히 좀 안타깝습니다.”
 잘 깍인 나사처럼 단단하고 반듯한 외모의 은곤씨. 열심히 저축해 훗날 개인 사업체를 차리는 것이 그가 그리는 자신의 미래다. /김진국기자(블로그) 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