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해수풀장 개발 잃어버린 20년
 1982년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에 공장을 두고 시계제조 업체로 이름을 날리던 (주)한독은 ‘거창한 계획’을 내놓았다. 인천시 연수구 아암도 맞은 편 해안 44만여평을 메워 ‘송도 유원지 해수풀장’을 꾸미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독이 그린 해수풀장의 그림은 지금 (주)인천도시관광이 운영하고 있는 ‘송도 유원지’와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총 공사비 246억원을 들여 돌고래쇼장과 수족관, 보트장, 풀장, 호텔, 빌라촌, 식물원, 자연학습장, 전망대 등 33개의 시설을 한꺼번에 집어넣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6천200평 규모에 7개 테마로 나눠 조성할 계획이었던 풀장만 하더라도 지금에서야 도입된 ‘파도 풀장’ 터가 잡혀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종합위락단지’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1989년 매립준공을 얻은 한독은 1994년 5월 시공사인 세계물산을 통해 전체 매립지 중 6만1천평의 터를 떼어 야구장과 축구장, 야외음악당, 솔밭 쉼터 등을 꾸미는 ‘시민휴식공간 조성공사’에 들어갔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한독은 1997년 IMF 관리체제를 앞두고 도산위기를 맞았다. 한독이 휘청거리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곧바로 송도매립지 해수풀장 조성사업을 한독과 공동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당시 대우는 부평의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출고한 수출용 자동차들을 세워둘 땅이 마땅치 않자 송도 매립지 일부인 11만평에 하치장을 조성하겠다는 조건을 들고 나왔다. 지금 하치장이 조성된 배경에는 이런 곡절이 있다. 우리자동차판매(주)로 이름을 바꾼 한독은 송도매립지를 1999년 대우의 계열사로 넘어간 (주)대우자동차판매와 김우중 회장의 아들(50) 등에게 분할매각했다.
 대우자판 등에 송도매립지의 소유권이 넘어간 뒤 한독의 계획했던 ‘송도 해수풀장 조성사업’은 갑자기 멈추고, 대우그룹이 세운 개발계획이 새롭게 등장했다.
 대우는 송도 매립지에 ‘대우타운’ 건설계획을 인천시에 던졌다. 2002년까지 102층 짜리 건물을 지어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도매립지의 용도변경이 전제되어야 했다. 도시계획상 자연녹지에 유원지 시설이었던 용도를 상업지역과 준주거지로 전면 수정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우타운’ 건설계획은 이내 특혜시비에 휘말렸다. 용도변경에 따른 수천억원 대에 이르는 땅 값 차익을 대기업에 줄 수 있느냐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최기선(崔箕善) 전 시장은 대우자판이 제공한 3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불거지면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결국 최 시장은 2002년 임기 만료로 그만두기 직전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우그룹의 부도로 잠시 주춤했던 대우자판의 송도매립지 개발계획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앞에 들어선 경제자유구역 ‘송도신도시’가 뜨면서 송도매립지도 개발에 대한 상승효과를 타고 있는 것이다.
 대우자판은 최근 송도매립지 28만8천평에 국내에서 가장 높은 105층(480m) 짜리 국제금융센터 빌딩(연면적 15만평)을 건설하겠다며 대규모 개발계획을 다시 내놓았다.
 그 주변에는 내·외국인을 위해 주거와 관광 기능을 함께 갖춘 5500 가구의 ‘월드 빌리지’를 짓는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이 같은 개발계획을 추진하면 국제금융센터에서 일할 2만2천300여명에게 새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고, 건설과정에서는 매년 1만1천800여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생겨 모두 3조9천억원에 이르는 생산유발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게 대우자판 측의 주장이다.
 여기에 대우자판은 국제금융센터 105층 가운데 30개층과 그 주변에 있는 땅 가운데 10만여평을 시민공원·관광지 용도로 시민들에게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도 1천494억원의 취득세에다 해마다 266억원의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대우자판의 개발계획을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다.
 한독이 매립할 당시에 비해 그 주변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고, 송도 매립지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도 유원지보다는 다른 용도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청이 최근 대우자판 땅 28만평을 포함해 송도 매립지 81만평 등 전체 6개 지역 937만평을 경제자유구역으로 편입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특혜시비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대우자판의 뜻대로 개발계획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인천지역 대단위 개발계획이 시민·사회 단체의 반발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동양제철화학의 경우도 그렇다. 유원지 시설로 묶여 있는 동양제철화학 해수펀드 10만여평이 폐석회 매립부지로 용도변경을 추진하자 시민·사회 단체사이에서 특혜시비를 들고 나오고 있다.
 계양산 자락에 골프장 등을 지을 계획을 하고 있는 롯데와 남동구 해양생태공원에 대규모 택지개발이나 골프장을 계획하고 있는 (주)성담측과 형평성 문제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교통이나 환경·문화 등의 기반시설은 형편없고 인구만 많은 도시에서 이처럼 많은 인구와 교통을 끌어들일 사업이 굳이 필요한 지에 대한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당초 해수풀장 조성을 목적으로 매립된 한독의 송도매립지.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해수풀장 조성 얘기는 사라지고, 국내 최고층 빌딩을 짓느냐 마느냐로 치닫고 있다. /박정환기자 hi21@im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