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분야에서는 국가로부터 명장으로 지정된 이가 전무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명장신청에서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올해 다시 도전 할겁니다. 평생 쏟은 땀과 노력속에서 자부하는 것 하나는 목공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나에 대한 신념이 그 힘이지요.』

 목공 기능장 가풍국씨(53ㆍ인천시 남구 주안4동 249의 1 <&28185>424ㆍ2489)가 올해 꼭 이루어야할 삶의 목표다. 재작년 12월 산업인력공단의 목공분야 기능장시험에 합격하기까지도 4년여동안 다섯차례 낙방끝에 기필코 도달해내고 말았다.

 가씨가 끊임없이 이분야 도전인생을 꾸려온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열아홉 나이부터 시작한 목공은 바로 그의 천직이며 그렇기에 최고의 장인이 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사고의 전부다.

 인천 석바위부근에서 목공소 간판을 내걸고 나무와 씨름한 세월이 올해로 꼭 20년. 그 이전에 겪은 고생은 그의 말대로 「돈주고도 살 젊어 고생」이란다. 충남 서산에서 형님 일을 돕기위해 시작한 목공일이 왜그리도 재미있던지, 3년정도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겨 기술하나 믿고 아무 연고조차 없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리고 공사판을 전전긍긍하며 보낸 1년, 이어 정릉에 있는 「건설기술 교육원」전신격인 학교에 어렵사리 입학, 결국은 건축목공 기능사보ㆍ목공기능사 2급 이라는 자격증을 따내게 된다.

 『드디어 취업 길이 열리더군요. 해외건설현장에 파견, 일본과 이란에서 4년여동안 일했습니다. 외국 기능공들과 실력을 겨루면서 내내 최고의 기술을 지닌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보낸 시간들이었지요.』

 일에서 그의 욕심은 계속됐다. 목공소 운영에서도 직원을 두고 일하는 것이 못미더워 모든 작업을 혼자 해냈고 「좋은 제품 만들기」라는 단순한 목표는 어느새 「장인정신이 배어있는 제품」으로 옮겨갔다. 이에 대한 실천이 기능경기대회 출전이다. 인천지방 기능경기대회에 3년연속 출전, 최고령 나이에 은상과 동상을 잇달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목공기능장 시험에 합격을 함으로써 기능경기대회 출전선수에서 일약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기능사보 자격증을 손에 쥔지 25년만에 일궈낸 성과다. 시점은 작년 11월.

 가씨가 지닌 도전인생이 또하나 있다. 어려운 형편으로 겨우 초등학교를 좁업한 뒤, 중학 진학 대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것이 그의 학력의 전부다보니 배움에 대한 한이 맺힐 수 밖에.

 『일에 쫓겨서 「내년부터」가 되풀이 됐어요. 50살이 되던 해에 더이상 미루면 안되겠구나 결심했지요.』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워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공장 지하 작업실 한켠에 불을 밝히고 「야독(夜讀)」에 몰두했다. 결과는 96년과 98년 각각 중졸ㆍ고졸 검정고시 합격. 두 시험 모두 최고령 합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명장을 목표로 하는 삶 바탕에는 다름아닌 목공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완성한 기술을 대대로 전수하고픈 바램이 절절하지요. 그것이 바로 장인정신 아니겠습니까.』 그가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김경수기자〉 kksoo@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