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인가 어느 잡지에서 30대 직장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국내 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었는데 그 조사 결과가 참으로 황당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다섯 사람이 김소월, 서정주, 윤동주, 한용운, 이문열 순이다.

 설문 조사 결과를 읽으면서 내내 석연치 않았던 기분의 정체는 바로 5위였던 이문열을 빼고 네 명 모두 시인이라는 데 있다. 더구나 네 사람을 꼽은 사람이 전체의 70%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물론 한국인이 특별히 시를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작품은 이들의 대표작 정도지만, 그 대표작에 대해서는 전문가 이상 시어에 담긴 상징성까지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모두 중ㆍ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작품들이고 시험을 위해 참고서에 빨간 색으로 쓰여진 내용을 달달 외웠기 때문이다.

 가슴에서 잔잔하게 물결치는 감동 대신, 교과서에 받아 적은 선생님의 해설을 버릇처럼 떠올릴 수밖에 없는게 30대 직장인들의 정서라니….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가슴 아프다.

 해마다 각국 국민들의 독서량을 비교하는 통계가 신문에 실리곤 하는데 늘 우리 나라 국민들의 평균 독서량은 꼴찌를 맴돈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국민만이 일등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라면서 실어놓은 연령별, 계층별 필독도서 목록에는 늘 따분한 것들 뿐이다.

 왜 한국인은 책을 읽지 않는가? 어떤 이는 책읽지 않는 게으른 국민성을 탓하며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학생들과 먹고 살기 힘든 일반인들에게 책은 더 이상 마음의 양식이 아니다. 게다가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 한 권조차 골라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독서 환경은 부담스런 짐일 뿐이다.

 좋은 책을 많이 만들어 보여주고,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도록 하면 누구나 책의 재미에 푹 빠질 것이다. 머리와 가슴에 책을 담아놓으면 시키지 않아도 누구에게든지 말하고 싶어 못배기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고작 교과서에 실린 시인 몇 사람만을 알고 있는 그 30대 직장인들이 부모가 되어 이제 자식들에게 책읽기를 요구하고 있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마냥 재미없는 책들을 들이밀면서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 똑같이 읽기를 닥달한다. 그렇게 억지로 책을 읽어봐야 남들 앞에서 말 한 마디 제대로 뱉지 못하거나, 억지만 부리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강요된 읽기는 그것이 책 읽지 않는 부끄러운 국민이라는 오명을 면치 못하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