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아마도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탄생은 부활에서 시작되었다고 할만하다. 그러니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주는 의미는 크다. 안병무 교수도 『어떤 종교든 성탄일은 있으나 부활절은 없다』고 말한바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부활은 으뜸되는 교리요 거듭난다든가 재생한다든가 하는 신앙생활은 항상 강조된다.

 기독교에 부활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부터이다. 14대 교황 빅토리오1세가 봄철의 특정한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도록 함으로써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에베소의 몇몇 주교들의 반대도 있었으며 나라나 교회마다 부활절이 다르기도 했다.

 오늘처럼 부활절의 날짜가 확정된 것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였다. 이 회의에서 예수 당시의 절기를 추정 그레고리력으로 춘분이후 첫 만월이 지난 일요일로 계산해낸 것이다. 예수는 목요일 저녁의 유월절 만찬후 체포되어 금요일에 처형되고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부활했다. 그런가하면 동방교회의 부활절은 다르다. 율리우스력으로 유월절 후의 첫 일요일을 지킨다고 한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의문은 줄기차게 계속되어 왔다. 사실 죽은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교리를 수긍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이 육체적이며 역사적인 사실인가의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부활이란 죽음을 전제하고 또한 죽음은 고난을 전제한다고 할때 그것을 극복한 희생과 사랑의 근본을 부활의 의미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의 처형후 숨어버린 제자들이 어떻게 새힘을 얻어 선교에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팡세」에서 파스칼도 되묻는다. 『예수는 같이 있을 동안은 그들을 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뒤 그들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을 움직인 사람은 따로 있었단 말인가』

 내일이 부활절이요 각지에서 기독교인들의 연합예배가 있을 예정이다. 부활절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에 있듯 가난한 이나 병상의 환자 등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부활의 힘이 미쳤으면 한다.